[해외 칼럼] 암호화폐에 대한 미국 당국의 실패한 접근 방식

토미카 틸레만 혼벤처스 최고정책 책임자(CPO) 2023. 5. 1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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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디지털 자산 규제 불확실성을 둘러싼 규제 당국과 업계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대다수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분류해야 하며, 이에 따라 SEC가 관련 위법 행위에 대해 규제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디지털 자산 산업 규제에 새로운 법률은 필요 없으며, 기존 증권법에 따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 업계는 암호화폐가 금이나 은과 같은 상품이라며, SEC가 기존 증권 법률이나 규정으로 산업을 규제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SEC는 규제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SEC는 4월 17일(이하 현지시각)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와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윌리엄 시하라를 미등록 증권거래소 운영 혐의로 기소했다. SEC는 비트렉스가 증권에 해당하는 암호화폐를 매매하면서도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비트렉스는 미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앞서 SEC는 지난 3월 또 다른 미국 최대 규모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① ‘웰스 노티스(wells notice)’를 보내기도 했다. 코인베이스도 반격에 나섰다. 이 회사는 4월 24일 SEC에 제출한 청원서에 대한 대답을 강제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코인베이스는 지난해 7월 SEC에 기존 증권법을 디지털 자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 디지털 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하는 방식 등과 관련한 총 50개의 질문을 골자로 하는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반면 전 세계에서는 디지털 자산 관련 규제를 재정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4월 20일 가상자산 규제 포괄 법안 ② ‘미카(MiCA)’를 채택했다. 홍콩은 지난해 10월 ‘가상자산 발전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고, 6월 1일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해당 라이선스를 통해 일반 개인도 암호화폐 거래가 허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미국의 디지털 자산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패트릭 맥헨리 공화당 하원 의원은 겐슬러 위원장과 SEC가 미국의 혁신성과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고, 필자 역시 SEC의 지금과 같은 행보가 앞으로 미국의 경제 및 안보 이익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사진 블룸버그

4월 18일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영국, 유럽연합(EU),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이 디지털 자산 규제를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있는 시점에서 겐슬러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이번 청문회는 자신의 이런 행보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법조계에는 ‘법이 내 편일 때는 법을 주장하고, 사실이 내 편일 때는 사실을 주장하며, 둘 다 아닐 때는 탁자를 두드리라’는 오랜 속담이 있다. 겐슬러의 청문회 증언에서는 탁자를 두드리는 듯한 장면이 많이 등장했다. SEC 위원장은 디지털 자산 정책과 관련한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하지 못했다. 이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 불확실성, 미국의 관련 기술 인재가 빠르게 유출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토미카 틸레만 혼벤처스 최고정책책임자(CPO)전 세계경제포럼(WEF) 4차산업혁명협의회 회원

청문회 동안 겐슬러는 짧은 공개 논평부터 최근 잇따랐던 고위직 이탈까지 모든 것에 대한 반발에 직면했다. 그중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겐슬러가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지난해 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 이후, 겐슬러는 SEC가 암호화폐 관리에 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규제 당국과 관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SEC는 겐슬러의 지휘 아래 디지털 자산과 관련한 50건 이상의 조치를 추진했다. 이런 그의 방식에 초당적 비판이 쏟아졌지만, 겐슬러 자신도 그 방식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겐슬러가 SEC 위원장에 취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직면한 규제 문제에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반 ③ 웹 3.0 산업 규제에 대한 미국의 일관적이지 못한 접근 방식을 반영한다. 이번 청문회에서 겐슬러 위원장의 증언은 그 모순적인 방식을 제대로 보여줬다.

우선,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볼 것인지 증권으로 볼 것인지 명확하게 결정해야 한다. 패트릭 맥헨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은 ‘비트코인 다음으로 큰 디지털 자산인 이더리움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으로 청문회를 시작했다. 겐슬러는 청문회 동안 같은 질문을 무려 12번이나 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겐슬러는 당초 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디지털 자산이 증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 그는 그 질문에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고, 디지털 자산 규제 적절성에 대해서는 “법률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여러 방향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겐슬러의 태도는 디지털 자산 규제 불확실성을 조장해 관련 업계의 안정적인 경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크리스 루헤인 혼벤처스 최고전략책임자(CSO)전 에어비앤비 글로벌 정책 및 공공 업무 책임자

둘째, 겐슬러는 디지털 자산 규제와 관련한 SEC의 권한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민주당 중진인 맥신 워터스 의원은 겐슬러에게 SEC가 암호화폐 규제에 필요한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지 세 번이나 질문했다. 겐슬러는 매번 그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프렌치 힐 하원의원이 아직 SEC가 의회로부터 디지털 자산 규제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지적하자 그도 의회 권한 부여가 필요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셋째, 규제에서 자유로운 역외 기업이 소비자에게 훨씬 더 큰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에서 SEC는 왜 코인베이스 같은 미국 디지털 자산 기업을 표적으로 삼느냐는 리치 토레스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겐슬러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국 기업을 소환에 응하도록 하기가 더 어렵다고 답했다.

넷째, 겐슬러는 디지털 자산 기업들에 SEC 등록을 거듭 요구하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겐슬러는 디지털 자산 기업들에 적용할 새로운 법률은 필요하지 않고, 이들이 기존 증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청문회에 앞서 공화당 의원들은 겐슬러에게 디지털 자산에 관한 명확한 규제도 없는 상황에서 관련 업계를 제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내용의 공동 서한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겐슬러는 디지털 자산 기업의 미국 이탈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청문회가 열린 날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불확실한 규제 환경 때문에 미국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SEC는 지난 3월 코인베이스에 ‘웰스 노티스’를 보냈다. 이는 불과 2년 전 SEC가 코인베이스의 상장을 허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미국이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 디지털 자산 벤처캐피털(VC) 일렉트릭 캐피털에 따르면, 미국은 글로벌 디지털 자산 개발자 시장에서 매년 약 2%포인트씩 점유율을 잃고 있다. 전 세계 블록체인 개발자 수는 현재 2만3343명에서 2030년 1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이 웹 3.0 기업을 보유하는 것은 막대한 잠재적 이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겐슬러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브라질, 영국, 일본, 호주, 벨기에, 두바이, 싱가포르의 웹 3.0 기업들이 환영받는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디지털 자산 정책과 관련한 SEC의 선택은 미국의 경제 및 안보 이익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SEC에만 이 선택을 맡기는 것은 위험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미국 암호화폐 기업을 홍콩으로 유인하려는 중국의 행보와 겐슬러와 미 의회의 견해차 등으로 정책입안자들이 이 위기에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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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① SEC가 불법 금융거래 등 규정을 위반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기업에 해명을 요구하는 사전 통지서다. 코인베이스는 4월 27일 SEC 통지서에 대한 답장에서 “코인베이스는 상장이나 청산을 하지 않으며 증권 거래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② 유럽연합(EU) 의회는 4월 20일 찬성 517표, 반대 38표로 암호화폐 규제 패키지 ‘미카’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암호화폐 산업과 거래소 등에 직접 개입하는 포괄규제법이 마련된 것은 세계 최초다. 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는 EU 회원국 한 곳 이상의 금융 당국에 등록하고 유럽 금융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되며, 투자자에게 암호화폐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달러와 가치가 연동되는 코인) 발행량과 하루 거래액 제한, 새로운 코인 발행 감시, 충분한 준비금 마련 의무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③ 블록체인 기반 차세대 인터넷으로, 탈중앙화와 개인의 디지털 자산 소유권을 특징으로 한다. 기존 빅테크의 중앙 집중적 생태계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저장과 사용, 소유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분산화, 개인화된 개념의 웹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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