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기업인의 속성 논리와 경험 뛰어넘는 ‘촉’
지방 국립대학 교수를 20년 했다. 지방은 서울과 비교해 많은 것이 열악하지만, 국립대학 교수는 예외다. 벚꽃이 가장 먼저 피는 지방임에도 공무원 신분의 직업 안정성과 대학 조직이 주는 자유, 지역 유교 사회가 주는 대접이 있다. 정년과 노후가 보장되므로 경쟁을 꺼리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 직업에 합류해 학문적 성과가 기대되던 일부 소장 교수들이 세월이 지나도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는 개방과 경쟁이 약한 이 직업이 주는 반대급부다.
이와는 반대로 지방 제조업 사장은 모든 면에서 최악의 조합이다. 시간이 갈수록 여건은 더 악화한다. 필자는 이를 24년째 하고 있다. 기업인은 경계인이다. 늘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에 있다. 잘나가다가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다.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선과 악, 명분과 실리, 이기심과 이타심, 망상과 비전 그리고 충성과 배신의 경계에도 있다. 누군가는 교도소 담장을 걷는 직업이라고 했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는 강인 황천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도 했다.
기업인은 늘 불안하다. 그래서 예민하다. 예민함은 변화를 감지하는 촉이다. 이 촉은 불안의 보상이다. 오랜 가뭄 끝에 바다 저쪽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뭉게구름 하나로도 곧 폭우가 다가옴을 감지하고 집중해 하늘을 지켜봐야 한다. 다가오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결단하고 실행해야 한다. 어려운 선택의 시간이다.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송두리째 날릴 게 없는 안정적이고 보장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이런 예민한 촉을 갈고닦을 이유가 없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라도 하늘을 쳐다볼 이유가 없다.
기업인의 촉은 그 기업의 생명줄이다. 이 촉을 발달시키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경험이 만든 지식과 똑똑한 사람들이 가지는 합리성이다. 불안과 예민함을 통해서 변화를 먼저 감지한 기업인은 담대함과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논리와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 상상력의 크기가 기업인의 그릇이고 기업의 한계다. 담대함과 상상력은 태생적으로 실패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기업인은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에 자존심을 걸어서는 안 된다. 경제학과 법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 가운데 기업인으로서 탁월한 경영 성과를 보여준 경우를 잘 보지 못했다. 그들은 지식과 경험이 주는 논리에 매몰되기 쉽다. 기업인은 시대를 한걸음 앞서가는 담대한 상상력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익(commonly good)이 되는 세계를 그려가야 한다.
기업인은 사람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 상인의 계산하는 머리와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훌륭한 기업인이 되기 위해 좋은 대학에서 많이 공부할 필요는 없다. 현장이 학교이고 실패가 선생이다. 실패는 성공의 길을 가르쳐주는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기업인은 없다. 어떤 이는 실패로 성장하고 어떤 이는 실패로 소멸한다.
기업가는 책임의 맨 앞에 서서 스쳐 지나가는 운을 낚아채 등에 올라타고 힘껏 채찍질해 도약해야 한다. 선한 의지로 사람을 모으고 자부심을 충만하게 해 조직의 결속력을 키워가야 한다. 운(運)·둔(鈍)·근(根)은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이었다. 미래 사업이 결정되면 둔(鈍)하게, 그 사업의 뿌리(根)를 파고들어, 핵심 역량을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운(運)이 받쳐줘 결실을 맺게 된다.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은 “성공하는 사람은 좋은 때가 오면 이를 탁 잡고 거기서 힘을 얻어서 나쁜 운의 힘을 슬기롭게 넘어가서 다시 좋은 때와 운을 연결시킨다”고 했다. 결국 사업을 꽃피우는 것은 불안 속에서 갈고닦은 변화를 감지하는 촉, 적기에 찾아온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업가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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