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파라과이 대선 親美·대만 성향 산티아고 페냐 당선 | 양안 대리전 대선 승리 美 유학파 페냐 “경제 침체 극복 최우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대리전 양상을 띠며 전 세계 관심을 끈 파라과이 대선에서 ‘친미국·대만’ 우파 성향의 산티아고 페냐 후보가 당선됐다.
인구 690만 명 중 25%가 빈곤층인 파라과이는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에 부는 좌파 물결인 ‘핑크 타이드’ 분위기 속에서도 몇 안 남은 우파 명맥을 유지하는 나라가 됐다. 페냐 당선인은 8월 15일(이하 현지시각)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대통령의 뒤를 이어 임기 5년 대통령에 취임한다. 미국 유학파로 ‘산티(Santi)’라는 별명이 있는 그는 일자리 창출, 낮은 세금, 외국인 투자 유치 등 기업 친화적 정책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좌파’ 늘어나는 중남미, 파라과이선 美 유학파 당선
4월 3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파라과이 대선 개표(개표율 99.89%) 결과 우파 성향 여당인 콜로라도당(ANR·공화국민연합당)의 페냐 후보가 42.74%를 득표해, 중도 좌파 성향이자 정통급진자유당(PLRA·급진자유당) 대선 후보인 에프라인 알레그레(27.48%) 후보를 이겼다. 앞서 콜로라도당은 1947년 이후 2008~2012년을 제외하고 71년간 집권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외신에선 야권 분열이 여당을 도왔다는 분석이 있다. 3위를 기록한 국가십자군당 소속 파라과요 쿠바스 후보는 22.92%를 득표했다. 또 알레그레 후보가 콜로라도당 대표인 오라시오 카르테스 전 대통령을 ‘파라과이의 파블로 에스코바르(콜롬비아의 마약왕)’에 비유하는 등 과격한 발언을 한 탓에 중도 표심이 이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페냐 당선인은 파라과이 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한 경제 전문가다. 그는 앞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와 기업 친화 분위기 조성 등 경제 부양에 우선순위를 두는 여당 정책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페냐 당선인은 당선 직후 “지난 수년간의 경제 침체와 재정 적자 이후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한 개인이나 정당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여러분과 함께 조국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앞장설 것”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가 공통의 대의를 우선순위로 두기 위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건 뒤로 미뤄야 한다”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결과 합의”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말끔한 이미지의 경제통은 국가가 맞이한 경제적 역풍과 대만 단교 및 중국 교역을 주장하는 농민의 반발을 뚫고 국가를 이끌기 위해 모든 지혜와 냉철함이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美 유학한 IMF 경제통 페냐, 야권 분열 수혜
아순시온에서 태어난 페냐는 파라과이 최고 명문인 아순시온가톨릭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라과이 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했다.
2000년대엔 모교인 아순시온가톨릭대에서 금융과 경제 이론 교수로 재직하며 통화 정책 관련 논문도 발표했다. 성격은 침착하고 평온한 스타일로, 재무장관 재직 당시 주변인들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페냐는 17세에 야당인 정통급진자유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2016년 콜로라도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거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페냐 당선인은 당시 “깊은 숙고 과정을 거쳤다”며 “국가 발전에 도움 되는 당에 소속됐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적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오라시오 카르테스 전 대통령(현 콜로라도당 대표)의 전폭적 지원에 그는 이후 빠른 속도로 정치 입지를 넓혀 온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페냐를 아는 사람들은 주로 ‘말끔하다(clean-cut)’ ‘점잖다(decent)’ ‘좋은 아이디어(good idea)’라는 키워드로 설명한 반면, 비평가들 사이에선 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당 지도자인 카르테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 공존해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다만 대체적으로는 ‘혁명(revolution)을 원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진화(evolution)를 원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
중남미 ‘中 바람’ 제동 걸리나
중국과 대만은 파라과이 대선 기간 내내 현지에 취재진을 파견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중국의 경우, 지난 3월 온두라스와 수교 이후 또 다른 친중 정권의 탄생을 기대했으나 좌절된 상황이다.
대만은 즉시 페냐의 당선을 반겼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5월 1일 트위터를 통해 “선거에서 압승한 산티아고 페냐의 당선을 축하한다”며 “양국의 오랜 관계를 발전시키고 당신의 지도력 아래 파라과이 정부와 국민이 번영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페냐 당선인은 당분간 중국과 거리를 두면서 대만과 전통적 우호 관계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도 “중국과 거리를 두고 대만과 역사적 관계를 고수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 1월 CNN 인터뷰에서는 “워싱턴 D.C.(미국), 예루살렘(이스라엘), 대만의 지정학적 관계를 계속 안고 가겠다”며 “이 삼각형은 파라과이 발전을 위한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단기간 내 경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자’는 주장이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최근 파라과이가 직면한 어려운 경제 상황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작년 기준 파라과이와 중국의 교역액은 약 20억달러(약 2조6840억 원)에 이른다. 대만과 교역은 약 2억달러(약 2684억원)로 10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이 2005∼2020년 15년 동안 파라과이에 투자한 돈만 1300억달러(약 174조4600억원)에 달한다. 2016년 차이 총통 집권 후 파나마,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중남미 5개국이 줄줄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것도 ‘차이나 머니’를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한편, 현재 중남미에는 2018년부터 좌파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비아, 2021년 페루, 2022년 콜롬비아·브라질에 줄줄이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현재 우파 정권이 버티고 있는 국가는 파라과이를 비롯해 우루과이·에콰도르·과테말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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