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만의 종목 스터디 <18>] 8년의 ‘존버’ 필요했던 대우조선해양, 시련 아직 안 끝났다
대우조선해양은 우리나라 경제사(史)를 다시 쓰는 기업이다. 2015년 무려 5조원대 분식회계가 적발됐고, 이로 인해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이 4조2000억원을 수혈해야 했다. 2017년에도 신규 자금 2조9000억원, 채권 출자전환 2조9000억원을 지원했다. 채무유예까지 합치면 총지원액이 12조8000억원에 달한다. 외환위기 여파가 컸던 2001년에도 2조9000억원을 쏟아부어야 했으니, 대우조선해양은 배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그냥 밑창 뚫린 배 그 자체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우리나라 구조조정 정책과 관련한 ‘케이스 스터디’로 활용되고 있고, 회계 부정과 관련한 사례로도 학계의 관심이 높다. 대우조선해양 때문에 강화된 외부감사법은 기업들의 골칫거리로 통한다. “사고는 정부가 (소유했던 기업이) 쳤는데, 왜 우리를 괴롭혀”라는 항변이 재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의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가 하면 반대로 정부가 새 주인을 찾아주려고 적극적으로 중매에 나선 많지 않은 사례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2015년 분식회계가 드러나기 전 투자한 이들뿐 아니라, 이후 진입한 투자자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계속 자금 조달이 필요했고, 새 주인을 맞는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계속 실적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는 있으나, 최소한 올해 상반기까지는 또 적자다. 한화그룹 인수가 확정되기는 했으나,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로 주식 수가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당장 투자해도 되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끝없는 추가 지원과 적자…살아날 수 있는 기업 맞나
대우조선해양은 감자, 유상증자 등을 반영한 수정 주가 기준으로 2013년 19만4250원에서 10년 뒤인 현재 2만원대까지 추락한 상태다. 2015년 분식회계가 적발된 시점과 비교해도 주가가 당시보다 하락해 있다. ‘이 정도면 투자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해양 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발주가 ‘미친 듯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은 만큼, 혹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진입하는 족족 물리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기업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2017년 추가 지원은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엔 정상화할 것이라는 게 당시의 예측이었다. 그러나 빗나갔다. 영업손실이 2021년에만 1조7547억원, 2022년에도 1조6135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400억~700억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이익을 낼 수 있는 회사가 맞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고정비 부담이다. 원재료 가격부터 인건비까지 비용은 치솟았는데, 설비 가동률이 60%밖에 되지 않아 도저히 흑자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올해 하반기부터는 액화천연가스(LNG)선 매출 반영이 시작돼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늘 그랬듯이 또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점이 우려 요인이다.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직원들이나 하청 업체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재무 상태다. 2020년 3조8000억원에 달했던 자기자본이 누적 손실로 지난해 말 6439억원까지 감소했다. 부채 비율은 1771%다. 수년간에 걸쳐 조 단위 자금을 지원받았다고는 믿을 수 없는 재무 상태라고나 할까. 다행히 한화그룹이 2조원을 추가 지원하기 때문에 자기자본은 늘어날 예정이지만, 반대로 보면 1억443만8643주가 신주 발행되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현 수준을 지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발행 주식 총수가 1억729만669주다. 현재 발행 주식 수와 유사한 규모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셈이다. 사실상 부채인 영구채(신종자본증권) 규모가 2조3328억원에 달한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영구채 보유자인 수은이 주식으로 전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전환가가 4만350원에 달하는 만큼 현실성이 없다. 수은은 이미 상당한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영구채 금리를 대폭 낮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엔 2022년부터 높여 받아야 했는데 1년 연기했고, 작년 말에도 5년간 추가 연장했다. 원래 올해부터는 최소 12%대의 금리를 받아야 했으나, 대우조선해양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1%만 받고 있다.
현재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수주 부진은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분기 말 기준 수주 성적이 연간 목표의 11%에 불과하다.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각각 42%, 21%의 수주를 달성한 것과는 비교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재 수주 잔고는 인도 기준 309억3000만달러(약 약 41조5081억원)로 3년 이상 일감을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올해 수주 잔고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목표는 전년 대비 33% 감소한 69억8000만달러(약 9조3672억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수주 목표는 회사가 지난해 LNG선을 중심으로 수주한 물량과 추가 수주 여력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과 시너지 효과가 비빌 언덕
투자 대상으로서 대우조선해양의 가치는 사실 한화그룹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몇 년간 국책은행들로부터 상당한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홀로 조선업을 영위하는 탓에 그룹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없었다. HD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업 위주의 회사만 있었으나 그럼에도 수직 계열화 및 규모의 경제 실현, 연관 사업 진출로 그룹 사이즈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 분명 있다.
사실 우리나라 ‘조선 빅 3(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너무 많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문재인 정부에 걸쳐 빅 2로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을 정도다. HD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한 것 또한, 사실상 빅 2 체제로의 개편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아무튼 이는 조선사가 없었던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한화그룹이 HSD엔진을 품에 안으면서 수직 계열화를 비롯한 인수 시너지 극대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위 산업 분야가 특히 기대된다. 해양에서 우주까지 종합 방위 산업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했듯, 한화가 함정 건조에 있어 13개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 대우조선해양의 전투용 잠수정 경쟁력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에너지 측면에서는 LNG 생산부터 운송, 발전까지 모두 다루게 된다는 점, 해상풍력 플랜트부터 그린 수소 생산, 운송까지 신재생에너지 부문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다만 현금 창출 능력이 다소 부족한 한화그룹이 이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 그룹 차원의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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