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M의 인사이트 경영 <31>] 오픈AI를 통해 본 AI 생태계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작년 말 오픈AI의 채팅형 AI(인공지능) 챗GPT가 대중에게 놀라운 경험을 안겨주면서 초거대 AI를 중심으로 디지털 서비스들이 변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초거대 AI가 본격적인 활약을 앞두고 있다. 네이버, LG, 카카오, KT 등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지금 얼마나 민첩하고 현명하게 움직이냐에 따라 명운이 갈릴 것이다.
이러한 경쟁 양상은 전통적인 사업 다각화와는 다르다. 핵심 역량을 이용해 인근(鄰近) 시장으로 진입하거나 기존 고객 기반을 활용해 끼워 파는 방식에서는 시장 교란자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식별된다. 그러나 초거대 AI와 같이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이 열릴 때는 누가 나의 경쟁자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과거 카카오톡이 그랬듯이 말이다.
국내 간편 결제 시장에 애플페이가 들어오면서 기존 강자들은 수성을 위해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용 단말기 문제, 카드사 수수료 문제 등이 있지만 아이폰 사용자가 우리나라 국민 중 약 25%에 달한다. 20대 중에서는 아이폰 사용자가 절반이 넘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간편 결제 시장과 같이 기존 시장참여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할 때는 시장의 판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스마트폰 제조사, 전자금융업자, 카드사, 은행, 가맹점 등이 어떻게 이합집산하느냐에 따라 구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AI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는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할까? 지난 몇 개월간 오픈AI가 걸어온 행보를 짚어보며 시사점을 얻어보자.
AI 생태계 시작의 타이밍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초거대 AI는 여러 해 동안 기대를 받아온 기술이다. 구글은 이미 초거대 AI에 기반한 챗봇을 개발하고도 대중에게 공개를 미뤄왔다. 챗봇이 여전히 잘못된 답변을 하기 때문이었다. 검색 시장에서 절대강자인 구글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작년에 메타(옛 페이스북)가 공개한 AI 챗봇은 형편없다고 몰매를 맞았다. 기술이 상당한 준비가 됐더라도 신뢰, 윤리, 규제 등의 비기술적인 이유가 AI 생태계의 조성 시점을 지연시킨 것이다.
한편 기존 방식의 AI 서비스들은 더 나은 경험을 신속하게 만들어 내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 기업들이 제공하는 온라인 챗봇이나 전화 상담봇들은 일정 범위 외의 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별도로 데이터를 확보하고 정제하고 학습하고 검증하느라 드는 비용, 시간, 노력은 큰 기업이 아니면 감당하기도 어렵다.
오픈AI는 챗GPT를 내놓기 전 잘못된 답변을 바로잡는 튜닝 작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어느 정도의 답변 오류는 눈감아줄 정도의 새로운 AI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 시점은 고객의 수용이 언제 시작되느냐에 달려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이 타이밍을 잘 잡아냈다. 메타는 서두르는 바람에 고객들로부터 수용을 받지 못했고 구글은 타이밍을 망설이다가 시장 선점을 하지 못했다. 기존 기술이 더 나은 가치를 줄 만큼 개선될 여지가 없다면 새로운 생태계가 촉발될 임계점은 가까워진다. 비기술적인 문제 중에서 치명적인 부분을 완화하면 사람들의 수용도는 높아진다.
AI 생태계 파트너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세상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도 남 좋은 일로 끝난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생태계는 결코 혼자서는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초기 사용자들의 반응을 이용해 파트너들을 유인하고 각자의 역할을 조율하고, 연대해 발전시켜야 한다.
오픈AI는 검색 서비스를 선보인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제공해 많은 업체와 개발자가 확장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오픈AI는 챗GPT에서 다른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챗GPT 플러그인’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여행 관련한 검색을 하다가 익스피디아를 불러와 항공편 예약을 끝낼 수 있다. 오픈AI와 손잡고 큰 투자를 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피스 제품군에 오픈AI의 초거대 AI를 결합한 ‘코파일럿(오픈AI의 GPT-4 기술을 기반으로 엑셀, 파워포인트, 아웃룩, 워드 같은 오피스 앱을 AI가 활용해 자동 편집 및 분석 기능 등을 제공하는 스마트 비서 서비스)’을 곧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오픈AI에 검색 서비스는 최종 목표가 아니다. 누구나 매일 사용하는 검색 서비스로 대중의 호응을 얻어냄으로써 구글, 메타 같은 빅테크(대형 정보 기술 기업) 사이에서 자신이 초거대 AI 생태계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것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보여줬고 동시에 서로 이득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했다. 파트너가 규합되면 초기 AI 생태계가 공고해지고 함께 여정을 떠날 진영이 구축된다.
기존 고객을 어떻게 AI 생태계로 이끌 것인가
MS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오피스 ‘코파일럿’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해 기존 오피스 고객들을 이탈 없이 초거대 AI의 생태계로 옮기고 클라우드 서비스들을 확장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기존 고객을 단단히 묶어두는 것은 생태계 확장 여정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 1위 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AWS)는 고객사들이 초거대 AI를 이용해 맞춤형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기존 고객사들을 그대로 흡수해 클라우드 생태계를 방어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경제 정보 제공에서 압도적 선두인 블룸버그는 자체 초거대 AI를 구축하고 지난 몇십 년간 축적한 금융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신생 스타트업과 달리 기성 기업은 기존 명성, 고객 기반, 양질의 데이터라는 이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MS, AWS, 블룸버그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열린 경영으로 AI 생태계 확장한 MS
구글, 메타, AWS가 스스로를 중심으로 초거대 AI 생태계를 조성하는 반면, MS는 오픈AI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초거대 AI 생태계에 진입했다. PC 시장을 장악했던 과거의 MS라면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티아 나델라는 CEO가 되면서 개방적 자세를 취했다. 회사를 앞세우기보다는 가치를 우선했다. 애플 iOS용 오피스 제품을 출시했고 클라우드용 오피스로 기존 기업 고객들을 끌어들이며 클라우드 사업을 키웠다. 이러한 접근은 초거대 AI 시장이 발현되는 시점에서 빛을 발했다. 오픈AI에 대규모 컴퓨팅 파워를 제공해 챗GPT의 등장을 돕고, 챗GPT가 촉발한 기회를 재빠르게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결합하면서, 오픈AI도 MS도 ‘윈윈’한 것이다. 전통적인 산업 관점에서는 1등이냐 아니냐의 싸움이지만 생태계 관점에서는 고객 가치 제안을 공유하고 서로의 역할을 조정하는 데 성공한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 음악 산업에서는 유니버설뮤직이 1등이지만 스포티파이 중심의 음악 스트리밍 생태계에서는 스포티파이와 여기에 참여한 음반사 모두가 승자다.
애플페이가 한국에 상륙하자 간편 결제 1위인 삼성페이가 네이버페이와 연동하는 결제 서비스를 바로 내놓은 대목도 AI 생태계 전쟁에서 필요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다만 AI 생태계 전쟁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고객이 느끼는 지불 가치는 불변이 아니며 파트너 연합도 언제든 재구성될 수 있다. 계속 명민하게 변화를 감지해 전략을 바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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