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욱의 밀리터리 밸런스 <11>] 한미 동맹 70년 핵 동맹으로 승격…워싱턴 선언과 북한의 반발
한미 동맹이 70주년을 맞이했다. 10주년을 기념할 날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된 10월 10일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70주년을 맞아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을 통해 한미의 ‘강철동맹’을 회고하고 감사와 함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과는 4월 26일 발표된 워싱턴 선언이다.
좌시할 수 없는 북한의 핵 위협
북한의 핵 위협은 이미 긴급하고도 명백한 안보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 미국과 협상이 노딜로 끝난 이후 김정은은 핵을 더욱 갈고닦기로 했다. 2021년 8차 당대회 이후 핵 능력의 강화와 전술핵의 실전 배치를 당면 목표로 하고, 2022년부터 본격적인 역량을 보이고자 했다. 무려 80발에 가깝게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한편, 전술핵 사용을 전제로 한 공격적인 핵 운용 교리를 소개했다. 이후 한미 연합연습에 대해서 전술핵 타격훈련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술핵으로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력 우위를 확립하고자 했다. 물론 북한의 공격적인 핵 태세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전술핵 타격 능력을 위한 운반체계와 플랫폼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지만, 핵탄두는 올해 3월 말에야 공개됐고 아직 핵실험은 실시하지도 못했다. 특히 북한은 ‘화산-31’이라는 단일 전술 핵탄두를 8종 이상의 핵무기에 장착하겠다고 밝혔으나, 각 무기체계의 역할을 감안한다면 적절한 조합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은 ‘화산-31’의 파괴력을 5㏏으로 밝히고 있으나, 이 정도의 파괴력으로 공군기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발 이상을 사용해야 가능하다.
북한은 또한 올해 4월 13일 ‘화성-18’ 고체연료 ICBM의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올해 2월의 열병식에서 발사차량이 공개되면서 상반기 중에는 시험발사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번 발사에서 추정할 수 있는 사거리는 불과 5000~6000㎞였다. 김정은이 참관한 발사에서 ICBM이 전체 사거리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ICBM 개발이 완료되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험발사를 강행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북한은 실질적인 능력 향상보다는 핵전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인지전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장 억제 vs 핵 보장
북한의 핵전력은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에서 거의 붕괴 수준에 이르렀던 한미 연합연습이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부활했고 미국은 확장 억제가 굳건함을 약속했다. 그러나 핵 위협이 고조되면 될수록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소위 전략자산이라며 북핵 위기 고조 시마다 대응에 나서는 미국의 B-1B 폭격기나 항공모함은 실은 북한의 핵에 대응하는 핵무기는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확장 억제에서 막상 핵무기의 활용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 현실이 지적됐다. 사실 확장 억제라는 단어 또한 핵우산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이 2006년부터 제시했던 개념이다. 핵우산이라는 단어를 대체하려는 것도 결국 냉전 종식 후 전쟁 억제에 있어 핵무기보다는 재래식 전략자산을 앞세우려는 포석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국이 핵 감축을 추진하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접근은 유효했다.
그러나 미·러 간의 INF(중거리 핵전력) 협정이 폐지되고 ‘뉴스타트(New START)’ 협정조차 중지되면서 핵 군축 레짐이 붕괴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 위협을 높이는 상황에서도 비핵자산에 의존한 확장 억제만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독자적 핵 개발까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 현실이 되어버린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확장 억제 가운데에서 핵 억제를 강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적의 공격을 막도록 하는 억제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동맹을 지키는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동맹 보장(Security Assurance)’을 핵이라는 측면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핵 보장(Nuclear Assurance)’이 한미 동맹의 주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핵 보장의 새 장을 연 워싱턴 선언
따라서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는 올해 핵 보장에 관한 새로운 접근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특히 우리 정부는 ‘공동기획·공동실행’이라는 키워드로 핵 보장에 관한 접근을 시작했다. 즉 미국의 핵 자산을 활용함에 있어 우리의 전략목표가 관철되도록 기획에 참여하며, 핵의 사용에 있어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 군이 참여하면서, 동맹 차원에서 핵전략을 실행한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바로 워싱턴 선언에서 이러한 우리 정부의 핵 억제 구상이 미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구체화됐다.
워싱턴 선언은 한미 정상 차원에서 동맹의 한반도 방위태세와 확장 억제 공약을 확인한 공식 문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바로 미국의 핵전략 수행에 한미가 공동으로 협력하는 부분을 명시화한 점이다. 핵전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이며, 바로 이러한 의사결정에 협력적으로 관여하기 위하여 양국은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만들었다. 또한 실행의 측면에서는 한반도에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플랫폼인 전략원잠(SSBN)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입항하도록 하는 한편, 우리 군의 신설 전략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의 협력하에 미국의 전략사령부와 도상 훈련(TTX·Table-Top eXercise)을 진행하는 등 구체적인 절차를 추진하도록 구상했다.
워싱턴 선언의 결과 새롭게 갖춰지는 동맹의 핵 태세는 현재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핵 보장을 끌어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의 공식적인 핵전략에서 외국과의 ‘공동기획·공동실행’은 현실적으로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핵 사용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의 독점적인 권한이며, 이에 대해서는 미국 내의 그 누구도 거부하거나 대항할 수 없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는 공동기획 면에서는 NPG(Nuclear Planning Group·핵기획그룹)를 활용하며, 공동실행 측면에서는 나토 회원국 5개국이 핵 투발용 전투기(DCA·Dual Capable Aircraft)를 제공하여 미국의 B-61 핵폭탄을 목표에 투하하는 것으로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NPG는 미국과 나토의 협의라기보다는 사실상 미국의 일방적인 통보로 진행되며, 핵폭탄은 미 공군 탄약 관리 대대가 직접 보관하다가 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작동코드를 입력하면, 나토의 전투기들은 그저 폭탄을 운반하는 것에 불과하다.
논란과 반발에도 변함없는 강철동맹
이렇듯 나토식 핵공유란 것도 실제로는 공유가 아니다. 게다가 진짜로 공유하게 되면 미국은 핵무기의 타국 이전을 금지하는 NPT(Non-Proliferation Treaty·핵무기비확산조약) 2조를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런 와중에 우리 대통령실에서 워싱턴 선언의 결과를 ‘사실상 핵공유’와 같은 것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자, 미국은 반발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워싱턴 선언은 핵공유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최근 핵 군축 레짐이 무너지는 가운데, 워싱턴 선언이 달리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비록 ‘핵공유’ 논란으로 한미 양국의 작은 해석 차이가 있었다고 해서, 워싱턴 선언의 의미가 감소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당장 북한의 반응을 보면 워싱턴 선언이 갖는 함의를 알 수 있다. 북한은 워싱턴 선언을 ‘극악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약적 산물’이라고 평가했으며, 북한의 핵 사용 시 정권 종말이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고에 대해서는 ‘광적인 망발’이나 ‘포악무도한 행위’로 폄훼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매우 격앙된 어조로 논평하고 있지만, 북한의 강한 어투는 그들이 느낀 공포에 비례한다. 워싱턴 선언은 한미 안보동맹을 핵 동맹으로 승격시키는 첫걸음이자 강철동맹의 증거임을 북한이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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