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서 뛰어나온 네 살 아이 치어 사망 운전자 '무죄'

도로교통공단 "급제동해도 충격 피하기 어려워"
법원, 사망진단서만으로 공소사실 입증 부족 판단

인천지법. 최주연 기자

골목길에 주차돼 있는 차량 사이에서 뛰어나온 네 살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한 40대 운전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운전자가 아이를 인지하고 급제동을 했더라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교통사고 분석 결과 등이 고려됐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17단독 이주영 판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 국적 재외동포 A(4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10일 낮 12시 58분쯤 인천 부평구 한 골목길에서 약 시속 14㎞ 속도로 자신의 승용차를 몰다가 B(4)군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가 난 곳은 보도와 차도 구분이 없고 횡단보도가 없는 이면도로로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이 있었다. B군은 주차된 차량 뒤편에서 A씨가 몬 차량의 진행 방향 쪽으로 뛰어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차량에 치이고 깔린 B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고가 발생한 지 약 19분 만에 외상성 머리 손상으로 숨졌다. 검찰은 A씨가 골목길을 건너는 B군을 들이받고 제동장치를 작동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진해 사망했다며 업무상 과실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도로교통공단은 "운전자가 피해자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시간을 1초로 계산할 때 시속 14㎞로 주행 시 차량이 정지할 수 있는 거리는 약 4.9m"라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인지할 수 있었던 위치로부터 실제 충돌 위치까지가 약 3m여서 급제동을 했더라도 충격을 피하기는 어려웠다"는 사고 분석서를 냈다.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를 인지하고 급제동을 했다면 피해자를 밟고 지나가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도로교통공단) 분석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바로 인지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를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충격으로 넘어진 피해자를 밟고 지나갔으나 피해자 사인과 관련해 직접 사인이 외상성 두부 손상이라는 사망진단서만이 증거로 제출됐다"며 "이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