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선생이 된 '헬렌 켈러'…시청각 중복장애인 이태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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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떠들지 않고 조용한 수업시간.
조금 특별해 보이는 이 교실의 선생님은 말할 수 없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 이태경씨(42)다.
이태경씨와의 인터뷰를 도운 김윤선 수어통역사(68)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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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누구 하나 떠들지 않고 조용한 수업시간. 대신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도 않는다. 다만 마주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있을 뿐.
조금 특별해 보이는 이 교실의 선생님은 말할 수 없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 이태경씨(42)다. 그는 지난 2022년부터 밀알복지재단 부산지부에서 그와 같은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점자와 촉수화를 교육하고 있다.
촉수화란 수화를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의사소통이다. 상대방이 시청각장애인 손 위에 손을 올려 손동작을 하고 시청각장애인이 그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방법, 시청각장애인의 손을 상대방의 손 위에 두고 움직임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
이태경씨는 2살 때 앓은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초등학생 때부터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도 점차 나빠졌다. 현재 시력은 빛의 여부를 조금 식별 가능한 정도다.
그는 어릴 적 다니던 농아인 학교에서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수어를 배웠다. 이후 시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맹아인 학교에 입학해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점자를 새로 익혔다. 시청각장애인에게 특화된 교육 과정이 없어 그는 학교를 두 번 다녔다고 한다.
“저는 그나마 운이 좋은 거예요. 시력이 있을 때 수어를 배웠기 때문에 촉수화를 익히는 데 다른 시청각장애인보다 수월했어요. 시력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상대방 수화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던 중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일화가 떠올랐죠. 친구와 손을 맞잡고 필담과 수화를 나누며 촉수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다수의 시청각장애인은 여전히 장애 특성에 맞는 적합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시청각장애인 수는 1만명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통계 조사에서 시청각장애인(중복장애인)을 별도로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에도 사라진 이들은 일상에서도 숨어있다. 활동보조자 없이는 간단한 외출조차 어려워 대부분 집에서만 생활한다.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진행하는 보행 훈련을 받은 적이 있어요. 흰지팡이로 바닥을 통통 치면서 장애물을 피해갔지만, 도로나 사람 쪽으로 향하는 저에게 주변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저는 알 수 없었어요. 제가 모른 척하는 줄 알고 화를 내기도 하더라고요. 그분에게 설명하고 싶었어요. 저는 시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아닌, 시청각장애인이라고.”
이렇듯 짧은 외출에도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이태경씨지만,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강한 모험심’ 덕분이었다.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은 꼭 가 봐요. 지금까지 제주도, 일본, 호주, 미국을 여행했어요. 주변의 도움 덕분이죠. 제 꿈은 세계일주랍니다.(웃음)”
배우고 익히기만 하던 그가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그의 모험심이 한 몫했다. 그러나 수어, 점자, 촉수화까지 익힌 그에게도 가르침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필담, 점자, 점화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어요. 학생들 각자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는 거죠. 사실 교육이라기보다는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곳이 이 교실뿐이거든요. 함께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껴요.”
이태경씨와의 인터뷰를 도운 김윤선 수어통역사(68)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태경씨처럼 수어, 점자, 촉수화 등을 골고루 구사할 줄 아는 장애인은 많지 않습니다. 태경씨 같은 인재를 사회에서 더 많이 발굴해야 해요. 모두가 수어를 할 수 있다면 청각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장애에 구애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우리는 제2의 헬렌 켈러, 아니 제2의 태경씨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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