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버린 그리스, 10년만에 '유럽 문제아' 탈출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5. 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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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집권 4년간 뼈깎는 긴축
무상의료·최저임금 '대수술'
GDP대비 부채 11년래 최저
유로존 평균 성장률 웃돌 듯
S&P 경제전망 '긍정적'으로
정크 → 투자적격 상향 기대

만성 재정적자로 국가부도와 유로존 탈퇴 위기에 몰렸던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 경제가 회복 궤도에 올랐다.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이던 국가신용등급도 조만간 투자 적격으로 상향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구제금융에 이어 2019년 급진 좌파에서 중도우파로 정권이 교체된 후 강력한 긴축정책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개혁을 추진한 데 따른 성과로 풀이된다. 1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최근 그리스 경제에 대한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국가신용등급도 현재 정크 등급 범위인 BB+에서 가장 낮은 투자 적격 등급인 BBB-로 상향 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그리스 중앙은행 총재를 비롯해 많은 정부 인사는 현재 개혁이 지속되고 정치적 안정이 유지된다면 이달 21일 예정된 총선 이후 국가신용도가 상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 투자운용사 리걸앤드제너럴의 크리스 제프리 금리전략 책임자는 "그리스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년 동안 25% 이상 증가한 반면 명목 부채는 4% 늘어나는 데 그쳤다"며 "GDP 대비 부채 비율이 개선되면서 머지않아 신용등급이 투자 가능 수준으로 상향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4대 은행인 유로뱅크의 포키온 카라비아스 최고경영자(CEO)는 "투자 등급 회복은 정부는 물론 민간 은행과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에도 직접 연관이 있는 만큼 유럽 금융시스템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결국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게 증명됐다"고 밝혔다. 2010년 이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채권단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그동안 강도 높은 긴축정책과 구조개혁을 실시해왔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적됐던 무상 의료와 소득대체율 90%의 연금제도는 이미 대부분 개편됐다.

결과적으로 최근 수년간 그리스 경제 회복세는 두드러졌다. 그리스의 GDP 성장률은 2021년 8.4%에 이어 지난해에도 5.9%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가장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골드만삭스 등 다수 기관이 그리스가 올해와 내년에도 계속 유로존 평균을 뛰어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그리스는 지난해 기준 GDP 대비 0.1%의 기초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차지하는 부실대출 금액 비율도 2016년에는 50% 이상에 달했지만 지금은 7%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206%까지 치솟은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도 지난해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171%로 내려갔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부채 하락률이다.

그리스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든 데는 과거 포퓰리즘 정치와 거리를 둔 뼈를 깎는 긴축과 개혁 조치, 해외 수요 호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눈에 띄는 성과 중 하나는 교역으로 2021년 기준 그리스의 상품 수출 규모는 2010년 대비 90% 늘어났다. 같은 기간 유럽 전체 평균은 42% 성장에 그쳤다. 그리스 GDP에서 약 5분의 1을 차지하는 관광업도 지난해 크게 회복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97%에 근접했다. 디미트리스 말리아로풀로스 그리스 중앙은행 수석경제학자는 "지난 10년간 그리스 경제를 견인한 효자는 수출"이라며 "(수출 증대의) 가장 큰 요인은 전면적 임금 삭감에 따른 저임금"이라고 설명했다. 긴축으로 빚어진 기나긴 고통을 감내한 결과 보상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그리스 최저임금은 월 832유로(약 120만원)로 12년 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수 주 전 다소 인상되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높았던 2010년 이전 시점 대비 25%가량 낮은 수준이다.

다만 21일 총선과 관련해 현재 집권 중인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당(신민당)의 압승을 장담할 수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최악의 열차 사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신민당은 급진좌파 성향의 야당 시리자에 5~6%포인트 차이로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7월 결선투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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