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때 두고 보자" 의료연대-간호협회, 간호법 두고 '빨강 vs 민트 표심' 맞불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인 면허 취소법'을 두고 내일(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예정된 가운데, 두 법안을 각각 반대·찬성하는 13보건복지의료연대와 대한간호협회가 내년 4월 총선 때의 '표심(票心)'을 새 승부로 내놓으며 맞섰다.
15일,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해 13개 단체가 뭉친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총선기획단 출범식'을 열고, 내년 4월 10일 실시될 제22대 총선에서 이 연대가 내놓은 정책을 지지해주는 정당·국회의원에 표심을 밀어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출범식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대한간호협회가 주도한 간호법 제정 절차에서 '원팀'으로 일해온 보건복지의료직역은 두 동강 났고, 극심한 반목을 겪고 있다"며 " 대한민국 보건복지의료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희망과 상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운을 띄웠다. 이 연대는 '희망과 상생의 사다리'를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8대 정책을 제안했다. 예컨대 △합리적인 보건복지의료정책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응원할 것 △보건복지의료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경륜을 가진 후보자가 당선되도록 연대·지지할 것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 폐지 정책을 제안할 것 등이 그 예다.
이필수 의사협회장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보건·복지·의료 분야에서 인기영합성 정책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입법 시도들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특정 직역만이 아닌 소수 직역들에게도 공정하고 균형있는 보건복지의료정책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를 적극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간호법 제정에 힘을 쏟는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도 "변화하는 보건복지의료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고 대한민국 보건복지의료를 더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보건복지의료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훌륭한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거들었다.
특히 최근 이슈로 떠오른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에 대해, 이 연대는 '학력 상한제'를 없애는 후보에 힘을 싣겠다고 공언했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간호조무사에 대한 '학력 상한' 제도는 대한민국 법률 체계에서 유일무이하고, 위헌성이 의심되며, 현대판 신(新) 카스트 제도라고까지 비유된다"며 날을 세웠다. 곽 회장은 "간호조무사가 자질과 노력에 합당한 평가를 받는 건 국민 건강과 보건 향상에 매우 중요하다"며 "간호조무사가 의료와 돌봄의 현장에서 좀 더 나은 처우를 보장받고, 보건복지의료직역의 당당한 한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연대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간호사 단체인 대한간호협회는 "총선을 통해 단죄할 것"이라며 맞섰다. 간호협회는 14일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건의를 공식 발표한 것과 관련해 규탄 성명을 내고 "간호법 제정이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인 만큼 울분과 분노를 누르고, 허위 사실의 실체를 밝히고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소속된 간호사는 전·현직 포함, 62만 명으로 추산된다.
간호협회 특히 이날 성명에서 "2020년 제2차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적 의료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집단 진료 거부를 했던 의사들과는 달리 간호사들은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지금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단 한 번도 국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그런 간호사들에게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입법 독주법'이라는 누명을 씌운 발언과 행태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62만 간호인의 총궐기를 통해 그 치욕적인 누명을 바로잡고, 그 발언의 책임자들은 반드시 단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간호협회는 향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단체 행동'을 벌이되 총파업 같은 '업무 전면 중단'으로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지금 다른 의사들의 업무뿐만이 아니라 임상병리사·방사선사들이 자신들의 업무까지도 간호사에게 막 떠넘기고 있다"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타 직역에서 떠넘겨진 업무를 하지 않는 방법, 또는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방법 등 법을 지키는 선에서 단체 행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양측은 모두 내년 총선 때 각자의 정책을 지지해주는 정당에 표를 던지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선 13보건복지의료연대에 따르면 13개 단체에 소속된 전·현직 종사자는 400만 명(현직 300만 명 추산)이다. 반면 대한간호협회에 소속된 전·현직 종사자는 62만 명이다. 인원수로만 보면 13보건복지의료연대의 '표밭'이 더 크다. 하지만 소속 회원들의 충성도는 까봐야 안다는 견해가 의료계에서 나온다.
실례로,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인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와 한국간호학원협회가 최근 간호조무사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파업하자고 해도 동참하지 않겠다고 말한 응답자가 95%에 달했다. 이에 대해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해당 설문 조사는 우리 협회가 아닌, 특성화고에서 실시했다. 대상자가 누구인지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으면서 응답자가 간호조무사라고 지칭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며 "실제와 통계는 (여론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부분 파업에 대해 참여 독려 공문을 보낸 데 대해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관계자는 "개원한 치과에 채용된 간호조무사는 1만 명 선이지만 간호사는 300명가량에 불과하다"며 "치과의사와 관련성이 매우 적은 간호법에 대해 파업해가면서까지 투쟁하려는 치과의사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귀띔했다.
간호법을 두고 벌여온 양측의 대결 구도에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시위 때마다 드는 피켓의 색깔이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빨간색, 간호협회는 하늘색 계열의 민트색을 피켓에 활용해왔다. 공교롭게도 이들을 지지하는 정당인 국민의힘(빨간색), 더불어민주당(하늘색)의 상징 색깔과도 같다. 하지만 '피켓 색깔을 일부로 특정 정당과 맞춘 건 아니'라는 게 양측의 설명이다.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굳이 그런 생각을 해서 제작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백찬기 간호협회 홍보국장은 "민트색을 사용하게 된 건 '간호법은 부모돌봄법입니다'라는 의미를 담아 '민심을 트다'란 뜻에서 민트색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공식 단체 명칭을 '13보건복지의료연대'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명은 앞서 '보건의료연대', '13보건의료연대'. '보건복지의료연대' 등으로 여러 번 변경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 측은 "단체명이 계속 바뀌는 건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비판해왔다. 이에 대해 이필수 의사협회장은 "연대가 처음 출범할 때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가 함께했고, 그 이후 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등이 들어왔다. 시간이 더 지나 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등이 더 들어와 이름이 바뀌었다"며 "오늘부로 공식 명칭은 13보건복지의료연대임을 밝힌다"고 언급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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