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현수막 난무…기업 정문앞은 무법지대
경영진 인신공격 현수막 가득
법조계 "집시법 재검토 나서야"
'아주 비정상적인 기업과 경영진' '서초구청·서초경찰서는 대기업 ○○노릇 그만하라!'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정문 앞에 내걸린 현수막 내용이다. 이곳은 그룹 최고위 경영진 등을 겨냥한 인신공격·명예훼손성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더불어, 스피커·확성기를 동원한 비방·욕설 소음이 매일 출퇴근·점심 시간마다 주변을 가득 메운다.
시위자들은 2013년 기아 개인 대리점 대표들의 부당판매 행위를 고발했다가 해고된 직원의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는 해당 직원과 회사 간 직접 고용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시위자들은 법적 다툼 대신 10년 가까이 본사 정문 앞에서 일방적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을 찾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거래처 관계자들이 보도록 영문으로 작성한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보다 못한 기아가 소송을 통해 관련 문구와 장송곡 사용 금지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이 금지한 표현만 일부 바꿔 시위를 재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현대차그룹 직원은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권'을 침해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며 "몇 년째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이제는 포기하고 그냥 출퇴근한다"고 토로했다. 현대차그룹 본사 외에 광화문에 있는 KT 앞에도 '범죄 경영진 구속 처벌'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남역 인근 삼성 서초타운 주변에는 빨간색 글씨로 '갑질하고 직무 유기하는 ××'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여럿 볼 수 있다.
업계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넘어선 일부 시위자의 목적을 대외 이미지에 민감한 대기업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헌법이 보호하는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집회·시위 방식을 제한하기 위해 시위 현장 혐오 표현 등을 규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무려 30여 건이나 발의했다. 하지만 21대 국회 회기가 1년 남짓 남은 현재까지도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시법을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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