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해하지 마세요"…창업가 4인방이 말하는 투자 유치 이야기 [긱스]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나 긴 투자 '빙하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1분기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60%나 줄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꿈을 펼쳐나가기 위해 창업가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투자 유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이성업 노틸러스 대표, 박광빈 엔츠 대표, 김우진 비즈니스캔버스 대표, 이대은 매드메이드 대표 등 창업가 4인방을 만나 투자 유치 성공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미래보다 중요한 '과거'... 조급해하지 말 것

이성업 노틸러스 대표가 어린 시절 푹 빠졌던 만화책은 슬램덩크도, 드래곤볼도 아니었다. 과학 학습 만화 전집이었다. 그 중에서도 발명편과 발견편이 좋았다. 나중에 꼭 발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 만화의 힘을 믿었던 그는 2013년 레진코믹스를 공동 창업했다. 2020년 키다리스튜디오에 회사를 매각해 '잭팟'을 터뜨린 그는 이듬해 교육용 웹툰 콘텐츠 '이만배'를 만드는 노틸러스를 창업했다.

지난해 8월 정식 출시된 이만배는 단숨에 '지식 웹툰'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시장의 지배자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투자가 필요했다. 프리 시리즈A 투자 라운드에서 34억원을 끌어모았다. 퓨처플레이, 본엔젤스, 카카오벤처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투자자들이 모였다. 시드(초기) 라운드에서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 김민철 야나두 공동대표 등 거물들이 엔젤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평판 관리'를 강조했다. 사업 계획보다도 중요한 게 '레퓨테이션'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창업 이후 이미 성공적인 엑시트(회수) 경험이 있는 창업자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또 과거 인연도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됐다. 김창원 대표는 레진코믹스 시절 경쟁사이자 멘토였다. 김상헌 전 대표는 15년 전 네이버에서 그가 보좌하던 '보스'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는 KAIST 시절부터 이어진 사제 관계다.

이 대표는 "인연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훌륭한 사업계획보다 과거의 행적이 더 중요하다"며 "사업은 피봇이 가능하지만, 평판은 피봇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투자 유치에 나선 초기 창업자들을 향해 "조급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지인들과 술자리도 가지면서 일에 매몰되지 말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라는 얘기다. 그는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긴급히 대표로 선임되고, 실적 턴어라운드를 달성하기 위해 주 80시간씩 일한 적이 있는데, 김봉진 의장께서 '그렇게 일하시면 안 된다'고 조언해줬다"며 "그말을 듣고 '내 삶'을 찾으려 노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넷플릭스를 보다가 턴어라운드 전략이 '번뜩'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시장 성장성 어필... 과장은 금물

기업용 탄소 배출 관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만드는 스타트업 엔츠는 지난달 인비저닝파트너스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엔스코프'를 이용하는 기업은 직간접적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이를 분석해 국내외에서 요구되는 표준에 맞춘 탄소 정보를 보고할 수 있다. 또 기업 맞춤형 탄소중립 로드맵을 마련하고 실제 감축과 거래까지 한 플랫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박광빈 엔츠 대표는 엔스코프의 고도화를 위해 투자금을 유치하기로 했다. 다행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과 맞물려 '임팩트 투자'에 강점을 지닌 인비저닝파트너스가 먼저 연락이 왔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기업설명(IR)을 다니면서 인연을 맺었다. 일주일에 두 세 차례씩 투자자들을 만나러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녔다.

박 대표가 내놓은 '투자 비결'은 시장의 성장성을 어필했다는 점이다. 그는 "탄소 중립이라는 거대한 트렌드가 몰려오고 있고, 이게 시장의 새 표준이 되면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우리 고객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또 해외에선 펄쉐포니나 워터쉐드처럼 우리와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라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새긴 마음가짐은 '과장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투자를 받기 위해 성과를 과장하거나 미래 계획을 '뻥튀기'해 적는 건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김우진 비즈니스캔버스 대표는 창업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2020~2021년 사이 위기에 빠졌다. 회사의 주력 제품인 기업용 협업 툴 '타입드'가 정식 출시되기 전이었고, 당연히 재무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시드 단계 이후의 투자 라운드를 열어야 했다. 데스밸리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최소 5억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했다. 

투자자 네트워크는 부족했다. 시드 투자자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소풍벤처스 측을 통해 이곳 저곳을 소개받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폭넓은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수십 개의 VC에 '뉴스레터'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2~3년 전만 해도 SaaS 시장이 지금처럼 주목받지는 않았다"며 "이 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리는 홍보물을 많이 제작해 배포했다"고 회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존경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만난 뒤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게 연락을 했다. 7~8개월가량의 러브콜 끝에 카카오벤처스를 비롯해 미래에셋벤처투자, 넥스트랜스, 신한캐피탈 등으로부터 20억원의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필요했던 금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김 대표는 피칭할 때 '투자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VC는 기본적으로 재무적투자자인 만큼 낮은 기업가치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는 게 목표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단순히 우리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는 데에서 나아가 우리가 이 만큼의 금액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이걸 갖고 어떤 성과를 낼지를 아주 상세하게 브리핑하는 게 중요하다"며 "파이낸셜 모델링을 통해 특정 시점(다음 라운드)의 매출 지표와 기업가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로드맵을 선보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딱 맞는 지표 찾기... '긴 호흡' 중요

반려동물 버티컬 커머스 '포옹'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매드메이드는 1500만 '펫팸족'을 겨냥하고 있다. 이 회사가 내놓은 PB 브랜드 '생식선생'은 2020년 출시 이후 '집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2년간 800%나 성장했다. 기세를 몰아 경기 김포 일대에 생산 공장도 지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말 스트롱벤처스, 대교인베스트먼트, 마그나인베스트먼트와 라이트컴바인하우스인베스트 등으로부터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이 회사의 이대은 대표는 사업에 '딱 맞는' 투자자를 찾아나섰다. 포트폴리오 목록에 반려동물 관련 회사가 있는 VC를 위주로 50여 통의 콜드 메일을 보냈다. 엔젤 투자자로 참여했던 이들에게 투자 라운드가 열렸다는 소식과 함께 투자자 주선을 받기도 했다. 한 IR 전날엔 부친상을 겪기도 했지만 창업가로서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미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IR 과정에서 '절대적인 숫자'보다는 '증가율'을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회사를 가장 '뾰족'하게 나타낼 수 있는 지표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연 매출 증가율, 회원 증가율, 바이럴 지수, 시장의 성장률 등을 통해 회사의 잠재력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3대 사료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와 반려동물 전문 영양사들이 모인 팀이라 인력 구성이 훌륭하다는 점을 어필하는 건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긴 호흡'을 강조했다. 그는 "투자 유치는 3~6개월이 걸리는 대장정인데, 투자사와 심사역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은 천차만별"이라며 "자칫 낙담하거나 의기소침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텐데, 정답은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물론 이게 아집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심사역들의 피드백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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