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포퓰리즘 막고 나라 곳간 지키는 법
좀 낯설게 들리겠지만 우리에게는 '쉰다리'라는 전통 음료가 있다. 쉰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한 제주 음료로, 톡 쏘는 청량감이 요즘처럼 더운 날 들이켜기 일품이다. 해학적인 이름과 달리 쉰다리가 태어난 배경은 눈물겹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더운 날 밥이 쉬이 상하자 쉰밥 한 톨도 버리지 말고 찾아 먹자는 조상의 애환이 담겼다.
늦봄, 쉰다리 잔을 들었을 때 22일 국회가 상임위원회에서 재정준칙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재정준칙은 무분별하게 새는 나랏돈을 막기 위해 국고에 걸어두는 자물쇠다.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으면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줄인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재정준칙 법안이 2년7개월 넘게 국회에서 헛돌며 여론 눈총이 따가워지자 이를 다시 논의해 보겠다는 것이다. 재정준칙이 필요한 이유는 수없이 많다. 코로나19 사태부터 2028년까지 한국의 나랏빚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로 전망된다. 눈덩이 부채가 걱정되는데 내년 총선까지 겹치며 국고를 털어먹으려는 정치권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공산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언론에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자는 기재부가 정부 재량으로 나랏돈 씀씀이를 더 최적화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조세 지출을 효율화하는 처방이 대표적이다. 예산을 쓰는 재정 정책만이 정부 지출의 전부가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받아야 할 세금을 받지 않는 조세 지출도 세입을 줄이는 엄연한 지출이다. 하지만 재정으로 지원하면서 세금으로 또 지원하는 중복 행정의 비효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금을 깎아주는 선심성 정책이 난무하며 최근 10년간 국세 감면액은 연평균 8.1%씩 늘어 예산 증가율(6.7%)을 훌쩍 웃돈다. 올해 639조원인 예산안에 국세 감면액(69조원)을 합치면 정부 씀씀이는 700조원이 넘는다. 어느 정도 지출 구조조정이나 자정 노력이 가능한 재정과 달리 조세 지출은 한 번 혜택을 주면 줄이기도 어렵다. 재정건전성을 목표로 한다면 정부는 조세, 재정 지출 시 사전 중복 여부를 검증하고, 사후 효과를 철저히 평가하는 체계부터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전체 지출을 잣대로 정책 비효율을 제거하는 내부 노력부터 차분히 시작해야 한다.
눈덩이 나랏빚 증가세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지금 정부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지출의 효율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쉰밥 한 톨까지 박박 긁어 쉰다리라도 만들어야 할 일이다.
[김정환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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