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법원으로 출근하는 예술가

2023. 5. 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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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리처드 프린스'
타인 SNS사진 무단 차용해
풍자적 댓글만 넣은채 전시
법원 "불공정한 이용" 판결
예술의 경계 두고 논란 지속
리처드 프린스가 2014년 뉴욕에서 타인 SNS에서 동의 없이 가져온 사진을 활용한 전시를 선보였다. 리처드 프린스 홈페이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무수한 영웅이 그러하듯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결코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경계를 벗어나고 한계를 뛰어넘으려 발버둥을 친다. 기존 체제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며 변혁을 희망한다. 당대 통념과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발한다.

미국 뉴욕 차용 예술가 리처드 프린스는 가는 곳마다 논란이 뒤따른다. 2014년 9월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새로운 초상화들'전 또한 그랬다. 늘 그렇듯 이 전시 작품들도 갤러리에서 법정으로 옮겨갔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미지들을 골라 확대 복제한 후 이용자 아이디나 사진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마치 회화작품 서명처럼 자신의 계정 아이디를 적고 짧은 풍자적 댓글들을 집어넣었다. 물론 계정 주인들에게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사진작가 도널드 그레이엄 것도 포함돼 있었다.

예술계나 법조계 의견은 갈렸다. 저작권 침해라는 주장의 반대편에서는 프린스가 현대인의 관음적 SNS 문화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미지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풍자처럼 전통적으로 허용되는 예술 범주에 속한다고 옹호했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공정한 이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누군가의 저작물을 이용할 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저작권법의 황금률이다. 그러나 프린스처럼 차용 예술을 표방하며 기법이나 기교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이미지를 붙여 넣어 의미를 변화시키는 개념적 능력을 중요시하는 예술가에게 법은 그저 장애물일 뿐이다. 그들 입장에서 예술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은 되레 예술적 상상력의 족쇄였다.

몇몇 예술가는 법정 출두를 무릅쓰고 법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했다. 끝끝내 '공정 이용의 법리', 원작자의 동의 없이도 타인 저작물의 이용 가능성을 열어둔 규정을 이끌어냈다. 기존 예술을 차용해 다른 시각과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예술을 생산해내는 것 또한 현대 예술의 표현 방식으로 정착됐다. 다음 도전은 어디까지가 '공정한 이용'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들은 법이 예술을 재단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작품을 들고 다시 법정으로 나섰다.

지난 5월 11일 뉴욕 법원은 그레이엄의 이미지를 차용한 프린스 작품에 대해 "콜라주처럼 원본 이미지를 작품 재료로 이용하지도, 충분히 변형하지도 않았다"며 "공정한 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몇 년 전 또 다른 유사 사건 때 프린스의 작품을 두고 공정 이용임을 인정했던 판결에서 다시 뒷걸음질 친 셈이다. '나의 예술을 법으로 가두겠다고?' '예술을 알지 못하는' 법조계와 사회 통념을 비웃으며 프린스는 앞으로도 갤러리와 법정을 오가면서 지낼 것 같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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