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세계의 공장' 타이틀 내려놓는 중국

손일선 특파원(isson@mk.co.kr) 2023. 5. 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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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갈등에 공급망 재편 겹쳐
글로벌 기업들 탈중국화 가속
인도·동남아로 생산기지 옮겨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엔 악몽
대중 무역수지 7개월째 적자
기업 피해 최소화할 대책 절실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

기자가 평소 중국 수출 기사를 쓸 때 공식처럼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 사건은 2001년 12월 11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다. 서방과 중국 사이에 교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가 들어서자 낮은 생산 비용과 거대한 수출 시장을 갖춘 중국으로 해외 투자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이후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미국 월마트 매장을 점령했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수출을 먹고 자란 중국 경제의 덩치도 빠르게 커졌다. WTO 가입 당시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였지만 지난해 18%까지 높아졌다. 영국 BBC는 훗날 2001년 발생한 세계 주요 사건을 기록하면서 중국의 WTO 가입이 9·11 테러보다 세계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움직임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인건비로 고심하던 차에 미·중 패권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덮치자 서방 회사들이 중국을 떠나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중국 공급망에 올인했던 애플이 최근 인도에서 아이폰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연장선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세계 최대 인구대국으로 올라선 인도가 중국이 가지고 있던 세계의 공장 지위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의 경제 체질 개선 노력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내수 중심의 자립 경제 구축에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과거처럼 수출에만 목매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서방의 제재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구조에 대한 중국의 열망은 더 커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과거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재미를 봤던 한국에 큰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미 곳곳에서 아우성이 시작됐다. 한국의 대중 수출이 급감하면서 대중 무역수지가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지속돼온 대중국 무역흑자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것 같은 윤석열 정부가 과연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국내 수출 기업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계속 커지는 동안 국민과 기업이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버틸 수 있는 정교하고도 실천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탈중국 전략을 제시하지는 못한 채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본격화되면 한국 수출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안이한 발언은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을 뿐이다.

[손일선 베이징 특파원 iss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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