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반도체 미래 경쟁력 '패키징', 한국엔 시간이 없다
'한국' '반도체' '후발주자'라는 말은 아마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낯선 조합일 것이다. '메모리 1등' 같은 수식어를 수십 년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반도체는 한국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국이 반도체에서 후발주자인 분야가 있다고 하면 놀라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 모든 분야에서 강국은 아니다.
이 중 가장 시급하게 후발주자에서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야 하는 분야는 패키징(packaging)이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가 물리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는, 즉 '무어의 법칙'의 한계에 가까워질수록 이 패키징 기술은 더욱 중요하다. 과거처럼 반도체를 작게 만들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갈수록 더 좋은 성능의 반도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키징 기술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키징은 쉽게 말해 여러 개의 칩(chip)을 수평이나 수직으로 연결하고 결합해 하나의 반도체처럼 동작할 수 있도록 하는 칩 묶음을 만드는 기술이다. 각각의 기능에 최적화된 여러 개의 칩을 결합했기 때문에 하나의 반도체에 비해 더 높은 성능과 맞춤형 기능을 구현할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반도체 패키징을 조명하는 기사에서 이 첨단 패키징 기술이 이제 반도체 산업 진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의미 있는 변화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중요한 기술이라면 발 빠르게 움직여서 기술력을 선점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대만의 TSMC는 이미 2년 전인 2021년에 일본 도쿄 인근에 첨단 패키징 기술을 연구할 연구소 설립을 위해 200억엔을 투자했다. 인텔도 패키징 분야 투자를 확대 중이다. 패키징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 뉴멕시코에 35억달러, 말레이시아에도 70억달러를 투자한다. TSMC의 일본 패키징 시설 투자는 전략적 선택이다. 일본은 패키징 분야의 강국이기 때문이다. 패키징 분야 중에서도 3차원 패키징은 반도체를 얇게 깎는 장치가 필수적인데, 일본의 디스코와 동경정밀 2개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마침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일본은 한국 기업의 투자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의 패키징 분야 협력은 우리에게 부족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얻은 노하우를 삼성전자가 국내로 유입해 한국에서 패키징을 하고 있는 온양사업장 등에 전파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발판으로 일본의 경쟁력 있는 첨단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등으로 가는 길의 출발선은 우리에게 뭐가 부족한지 인정하는 것이다. 앞서가고 있는 국가나 기업과 협력해 배워야 한다. 수십 년 전 한국의 1세대 반도체인들이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배우고 습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실현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전 세계가 반도체 산업의 '게임 체인저'이자 미래라고 지목한 패키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할 길이 됐다. 전 세계가 뛰어들고 있는 패키징 기술 전쟁에 더 늦기 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할 수 있길 기대한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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