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3. 5. 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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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여왕이 구심점 역할 한 건
70년 그 자리에 있던 친밀감
역사적 유산 없는 지도자는
정책·소통으로 지지 얻어야

지난 6일 영국의 새 국왕 찰스 3세가 마침내 왕관을 썼다. 하지만 대관식 내내 그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왕관의 무게에 짓눌린 듯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찰스 3세 앞에 놓인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때와는 달리 군주제 폐지 여론이 높은 데다, 브렉시트 이후 분열된 영국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찰스 3세가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아들 해리 왕자와의 갈등 등 왕실 가족 문제로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찰스 3세는 무엇보다 어머니의 큰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는 부담이 있다. 찰스 3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는 "과거에는 군주가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섰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을 전쟁으로 이끌 수 없다. 법률을 집행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마음과 헌신을 영국에 바칠 수 있다"며 헌신을 약속했고, 무려 70년을 여왕 자리에 있었다.

영국인들은 뉴스에서, 길거리 광고판에서 늘 여왕을 만날 수 있었다. 결혼식 때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그 아이가 자라 결혼을 할 때도 항상 여왕은 같은 사람이었다. 마차에서 손을 흔들거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여왕을 실제로 본 사람도 많다. 2018년 한 여론조사에 조사 대상의 31%(64세 이상은 49%)가 여왕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여왕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흠 없는 완벽한 군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친밀감을 바탕으로 나라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여왕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지난해 여왕 서거 당시 뜨거운 추모 열기로 확인됐다.

이제 막 대관식을 마친 찰스 3세는 어머니와 같은 이점을 누릴 수 없다.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왕의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비와의 이혼 경력과 막말 논란 등으로 찰스 3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영국인들도 많다. 영연방 탈퇴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기 힘든 것은 찰스 3세뿐이 아니다. 각국 지도자들도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재선 도전을 공식 선언한 이후 지지율 하락에 직면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의 설문 결과 바이든 대통령의 업무 수행 지지율은 36%로,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민주당과 민주당 성향 무당층에서 바이든 대통령 재도전을 지지하는 비율도 36%에 불과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는 가상 대결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지지율도 바닥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는데 프랑스 역대 재선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취임한 지 이제 1년이 된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낮은 지지율은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 1년간 한미동맹 재건과 대일관계 개선, 노동개혁 시동 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인사나 소통·공감 능력 등에서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지지율은 40%대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변화의 속도가 느린 부분은 다음 1년에는 속도를 더 내고, 또 변화의 방향을 조금 더 수정해야 하는 것은 수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남은 임기 4년 동안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처럼 오랜 시간 국민과 애정을 쌓을 시간도 없었고, 재임 기간도 왕처럼 길지 않은 각국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길은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주고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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