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출석도 '내 멋대로'
최근 수사기관의 피의자 소환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장면은 배우 유아인 씨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각 경찰과 검찰에 출석하려다 되돌아간 순간이다. 유씨는 지난 11일 경찰 비공개 소환조사 일정이 기자들에게 알려진 점을 항의하기 위해, 송 전 대표는 지난 2일 검찰이 그의 자진 출석을 거부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두 사람이 조사를 받지 않고 돌아간 구체적인 이유는 다르지만 '법 절차 집행도 내 입맛대로' 하겠다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마약 투약 피의자가 경찰 조사를 약속 시간 직전에 파투 내고, 불법 정치자금 피의자는 검찰에 '나를 당장 조사해달라'며 제멋대로 들이닥쳤다.
물론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누구나 법적인 방어권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취재진을 피해 출석해 조용히 법적 다툼에만 집중할 권리, 당국의 신속한 조사를 선제적으로 촉구할 권리 모두 마찬가지다. 더구나 소환 일정을 둘러싼 일종의 '기 싸움'은 늘상 있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의 수사권에 맞선 개인의 방어권은 더 실효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씁쓸한 것은 이들처럼 '유력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흉내 내기도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유씨는 '검찰총장 직무대리'까지 거친 국내 최고의 마약수사 전문가인 박성진 변호사 등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송 전 대표는 스스로가 법률가 출신인 유력 정치인이다. 장삼이사들이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을 들며 경찰 조사를 일방적으로 미룰 수 있을까? 취재진을 모아놓고 검찰청에 자진 출두하는 '결백 퍼포먼스'를 벌일 수 있을까?
배우로서 유씨는 '완득이' '사도' 등 작품에서 환경의 압력에 억눌리면서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수사를 받는 지금의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베테랑'의 악역 조태오와 가까워 보인다.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인물 말이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송 전 대표와 민주당의 퇴행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회로부터 얻은 게 많은 유력자일수록 '법 기술자'로서가 아니라 겸허한 태도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길 바란다.
[박홍주 사회부 hongj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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