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치 속 외면받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생존자 인권…“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태원 참사 200일]
“아들 재현이는 참사 현장에서 친구가 의식을 잃는 과정 모두 지켜봤습니다. 생사를 오가다 가까스로 구조됐습니다. 그러나 16살의 어린아이는 43일간 홀로 고통을 겪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인 고 이재현군 어머니 송해진씨가 15일 말했다. 이군은 제대로 된 심리상담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경찰은 부상으로 입원 중인 이군을 찾아와 부모의 동석 없이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군의 죽음 이후 송씨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자신의 무능으로 아이를 떠나보낸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형을 잃은 동생을 챙기느라 자신은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민간심리상담 센터는 이용할 수 없는 등 정부의 심리상담 지원은 구멍이 많았다. 송씨는 “시간이 2022년 10월29일에 멈춰있는 것 같다. 깊은 수렁에 나 홀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인권침해조사단은 이태원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인권침해보고회를 열었다. 인권실태조사에는 유가족·희생자 지인·생존자 등 26명이, 이날 기자회견에는 인권침해조사단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일부가 참여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온전한 애도와 추모의 기회가 없었다. 진상규명과 책임규명의 기회도 없었으며 정부는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치했다”면서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피해자들이 되돌릴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를 인권침해로 규정한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검찰 조사과정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인권이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에서 유가족 A씨는 경찰 조사 중 참사와 무관한 질문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경찰은 희생자였던 자녀의 평소 가족관계는 어땠는지, 다툼이 있지 않았는지, 학교에서 사이는 좋았는지 등을 물었다. 경찰은 자녀의 음주와 흡연 여부를 묻기도 했다. A씨는 “아이를 비행 청소년으로 몰고 가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유가족 B씨는 검사에게서 마약과 관련된 부검을 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생존자들은 ‘왜 그날 그곳에 있었냐’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침묵을 택해왔다. 생존자 C씨는 “병원에서도 ‘거기에 왜 갔느냐’는 말을 하니 아예 이태원 참사 생존자임을 숨기고 진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며 “(피해자들이) 거기에 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왜 매년 하던 예방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생존자 트라우마 지원도 촘촘하지 않았다. 생존자 D씨는 참사 이후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일상에서 흔히 겪던 스트레스에도 곧잘 무너질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D씨는 조사에서 “늘 아슬아슬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생존자 E씨는 “5년 뒤, 10년 뒤에 트라우마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정부의) 지원이 끊기는 건가 싶다”며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때 가서 만약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회의원 183명은 지난달 20일 ‘이태원 참사 피해자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그러나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법 제정은 표류 중이다. 유가족들은 발의에 참가하지 않은 116명의 국회의원에게 “특별법 제정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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