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취업규칙에 없는 탄력근로제 도입은 위법” 첫 판단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을 통해서만 도입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례가 나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근로계약이나 개별 노동자의 동의로는 안 되고, ‘노동자 과반’이 동의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때는 반드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최근 판결에 이어 대법원이 노동 유연화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항공기 청소용역업체 대표 A씨의 상고심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2014~2015년 직원 135명의 연장근로수당 총 52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이 많을 때 특정일의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일이 적을 때 다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일정 기간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제도이다. 근로기준법 제51조 1항은 ‘사용자는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2주 이내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A씨 혐의에 대해 1심은 유죄로 봤으나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직원들의 근로계약서에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를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A씨 회사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돼 장기간 시행됐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근로시간(주 40시간·1일 8시간)의 ‘예외’를 법이 정한 요건과 범위에 따라 허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입할 때도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취업규칙’에 의해서만 도입할 수 있을 뿐, 근로계약이나 노동자의 개별적 동의로는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A씨가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했다고 판결했다. 근로계약서를 취업규칙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A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단위기간 등이 제대로 기재돼 있지 않은 A씨 회사의 근로계약서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특히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에 대해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노동조건을 정할 때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지난 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대자동차 간부사원 취업규칙 사건 판결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한 기존 판례를 폐기하고, 노동자 집단의 동의를 받지 못한 취업규칙은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근로조건의 노사 대등 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라고 판시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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