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 과연 경제성 있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 각국의 원전 신규 건설계획은 거의 중단 상태에 이를 정도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 여파로 원전 부흥정책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 동유럽이나 중동지역의 원전수출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잡히지 않는다.
2018년 8월 한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체코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원전 수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체코는 1000MW 이상 1~2기를 대상으로 2019년 상반기 입찰에 대비한다는 것이었고, 폴란드는 2개 부지에 총 4500MW 규모의 원전 수출을 고려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100MW급 소형원전인 스마트(SMART)원전 2기의 건설 입찰을 위해 한국전력과 함께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5년 가까이 된 지금 시점에서 이들 국가에 대한 원전 수출 상황은 어떨까? 먼저 체코의 상황을 살펴보자. 글로벌이코노믹(2023년 5월 5일)은 ‘미 웨스팅하우스, 한·미 체코 원전 수출 분쟁 속 SMR 공개…한국에 압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정부를 동원해 차세대한국형 원전(ARP 1400)의 체코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한국형 원전을 둘러싼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3월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 신고를 반려했다. ‘외국 기업’인 한수원이 아니라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수출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이는 미국 정부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폴란드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의 경우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제동을 걸고 있다. 한국경제TV(2022년 11월 1일)는 ‘폴란드 원전 계약 2년 뒤에나…“수주 갈 길 멀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수원이 폴란드 민간 에너지 기업과 원전 개발을 협력키로 해 사실상 수주나 다름없는 것처럼 밝히고 있지만, 정작 원전 수출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수원이 아직 사업자로 선정된 게 아니며 해당 사업을 추진한다는 폴란드 민간 발전사인 제팍(ZE PAK)과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한 단계로 본계약 체결은 빨라야 2023년 말에서 2024년, 착공은 그보다 2~3년 뒤인 2025년에서 2026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이 폴란드 등에 수출을 추진하는 한국형 원전, 즉 APR1400에 자사가 2000년 획득한 ‘시스템80’ 원자로 설계 기술이 들어 있기에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지식재산권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했다. 사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09년 한수원이 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지식재산권을 문제 삼았다. 한수원은 당시 핵심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자문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마무리 지었다.
원전업계에서는 폴란드 퐁트누프 원전 사업 규모를, 4기 건설에 30조 원 정도로 추산하지만 만약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에 막혀 APR1400을 수출하지 못한다면 수주 금액은 기당 1,200억 원, 최소 2,500억 원 정도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아시아경제(2023년 4월 28일)는 ‘한미 원전수출 공동성명은 사실상 수출금지 메시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동성명으로 지난 15년간 추진해온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이 사실상 금지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 정부가 원전 수출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사실상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은 4월 28일 성명을 통해 “한미정상 공동성명에 담긴 ‘지적 재산권 존중’,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준수’는 한국 원전 수출에 대한 경고”라고 평가했다. IAEA 추가의정서는 가입국의 핵활동에 대한 핵사찰을 의무화한 국제 핵비확산체제의 일환으로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전 수출을 모색해온 한국에게 무모한 원전 수출 시도를 중단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우라늄농축 권한을 공공연히 주창해온 사우디는 이 추가의정서 가입을 거부해왔고, 미국은 핵확산위험 때문에 사우디와의 원자력협정 체결을 불허해왔기에 이번 성명으로 인해 한국이 지난 15년간 추진해온 사우디 원전 수출은 사실상 금지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집권 초기 원전수출 드라이브는 ‘빛좋은 개살구’로 드러나고 있다. 연합뉴스(2022년 8월 25일)은 ‘원전수출 첫 성과 낸 尹정부…중동 이어 아프리카 시장에도 진출’이란 제목으로 정부가 13년 만에 대규모 해외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약속한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목표 달성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2022년 8월 한수원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의 원전건설 담당 자회사인 ASE JSC사(社)와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대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APR1400을 수출한 것이었다면 원전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2차 건설사업 수주이기 때문에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돈줄이 마른 원전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친원전 전문가조차 평가절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UAE를 비롯한 중동지역에 대한 원전수출은 언론에 홍보된 것과는 달리 이미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4월 19일 강봉균 국회의원은 ‘전북중앙’ 에 기고한 ‘UAE원전 수출계약의 문제점’이란 칼럼에서 우리나라 원전수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당시 UAE 원전 건설공사로 따낸 금액은 186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아레바사는 360억 달러로 입찰해 우리의 입찰가보다 2배나 높은 가격을 써 냈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되어 있다. kW 당 건설단가가 26% 싼 한국이 총 건설가액은 93%나 싸게 입찰을 했으니 그 차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 강 의원의 지적이었다. 게다가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지역에 원전건설을 용인한 미국은 그 조건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자국 내에서 재처리하거나, 농축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이렇게 골치 아픈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원전건설 후 60년간 또 다른 200억 달러의 수입원으로 선전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 수출목표를 세우고, 2010년 현재 요르단과 실험로 건설을 추진했다. UAE와는 스위스가 개발한 ‘시스템M80+’를 기반으로 한 한국표준형 원자로인 APR1400 4기 건설에 합의했으나 카피(COPY) 전 기업으로부터 나온 지적재산권 주장으로 사실상 ‘수출정지’ 상태이다. 1995년 이후 원전의 95% 이상을 국산기술을 사용해 건설한다고 주장하고, 2012년 100% 국산화를 추진한다고 했으나 2009년 UAE 입찰중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전에 원자로냉각펌프 등에 지적소유권을 주장해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의 경우도 수십년 공들여왔던 원전수출이 6, 7년 전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뒤 사실상 원전수출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 히데유키(伴英幸) 일본 원자력정보자료실 공동대표가 2017년 1월 1일 『THE BIG ISSUE JAPAN』 302호에 게재한 ‘베트남, 원전계획 중지, 리투아니아, 계획 동결로 일본, 탈원전 정책전환으로 갈 수 밖에’라는 칼럼에서 일본이 1990년대부터 공을 들여 ‘올 재팬(All Japan)’ 체제로 성사시켰던 원전수주가 무산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09년에 4기의 원전건설계획을 승인하고 2014년에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자금난과 인재부족, 자재부족으로 연기를 반복해왔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건설비용이 2배로 뛰어오른 데다 베트남의 국가재정 악화와 주민의 반대가 거세지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미해결이 문제가 돼 2016년 11월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헤럴드경제(2023년 5월 3일)은 “탈원전 때문에 러·중이 시장 80% 장악…미국과 ‘SMR 동맹’으로 위상 회복해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 한국 등 주요 국가의 원전 수출이 주춤한 사이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원전 수출 시장의 약 80%를 장악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수출 원전 현황은 전체 34기 중 러시아가 23기, 중국 4기, 한국 4기, 프랑스 3기 등으로 러시아가 압도적인 비중(68%)을 차지했다. 러시아 원전 수출 경쟁력의 중심에는 국영기업 ‘로사톰(ROSATOM)’이 있다. 로사톰은 원전 건설뿐 아니라 자금 지원, 우라늄 농축, 운영 및 유지보수 등 모든 옵션을 ‘원스톱 패키지’로 묶어 신규 원전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국가에 제공한다. 중국 역시 3대 국영기업인 CNN, CGN, SPIC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와 일대일로(一帶一路)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해외 진출 정책에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원전 수출은 지금까지 대부분 민간기업의 몫이었으나 최근 원전 산업 경쟁력 복원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데 그 핵심은 기존 대형원전이 아닌 SMR(소형 모듈원전) 등 선진 원전의 개발 및 수출에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아카시 쇼지로(明石昇二郞)는 2011년 1월 『세카이(世界)』지에 이미 ‘원전수출의 진실’이라는 칼럼을 통해 당시 일본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던 ‘원전수출의 리스크’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 수출국의 핵폐기물을 일본이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원전사고가 일어나면 일본의 세금으로 보상해야 한다. 셋째, 원전가동의 비용도 세금에서 융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전수출 정책도 자칫 잘못하면 일본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우리나라는 수출국의 핵폐기물 수용 등의 나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엄청난 원전건설 비용에 장기투자할 수 있는가? 원전사고에 대한 사후보상책임을 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필요할 것이다. 결국 원전수출의 빛과 그림자를 제대로 알고 신중한 정책을 펴나가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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