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쇠고기 사 먹이고 분신…한 달마다 실직하는 현실 끊도록
1년 10번 실직하는 현실이 낳은, 월 100만원 떼는 ‘똥떼기’
200여 명의 ‘머리띠 부대’가 병원 앞 광장을 순식간에 메웠다. 상복 대신 이마에 검정 머리띠를 질끈 묶고서 손에는 저마다 노란 촛불을 들고 있다. 머리띠의 글자는 ‘열사 정신 계승’. 2023년 5월1일 노동절에 목숨을 끊은 건설노동자 양회동(50)씨의 동료들이다.
양씨의 빈소는 5월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동료들은 그곳에서 매일 밤 촛불추모제를 연다. 첫날 추모제 단상에 오른 양씨의 동료가 외쳤다. “정부는 어찌 건설노동자들을 삥이나 뜯고 다니는 시정잡배 취급합니까.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합니다!”
그날 양씨는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데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질렀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지역 간부로서 조합원 채용 요구와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한겨레21>이 노동조합 장례가 치러지는 서울대병원을 찾아 양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소개료 ‘똥떼기’ 끊으려 시작한 노조
화려한 꽃에 둘러싸인 남자의 표정은 결연하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마에 두른 빨간 머리띠에는 ‘단결·투쟁’이라 쓰였다.
“(사진처럼) 그렇게 진지하고 엄숙한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 웃겨주는 거 좋아하는 개구쟁이 형이고요. 추모제도 이렇게 진행하는 거 안 좋아할 텐데….”
양씨와 함께 강원건설지부 노조 활동을 한 김현웅 사무국장이 말했다. ‘양회동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의 사회를 맡은 그는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자제하고 차분하게 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이러면 형이 좋아하려나 모르겠지만” 하고 덧붙였다.
양씨는 철근공으로 평생을 살았다. 아내와 강원도 속초에 살며 두 자녀를 키웠다. 건설노동자로 일한 지는 오래됐지만 건설노조에 가입한 것은 마흔이 넘은 2019년 10월이다.
“노조를 꼭 신념으로만 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건설 쪽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중간착취가 워낙 심한데 노조 하면 처우가 훨씬 나으니까, 생계 때문에 오는 경우도 많죠.”(김현웅 사무국장)
양씨도 그랬다. 속칭 ‘오야지’라는 일감 소개업자가 불법 재하도급을 알선해 한 달에 100만원가량의 임금을 떼어갔다. 이른바 ‘똥떼기’다. 똥떼기가 유독 심하던 소개업자 밑에서 일하다 그는 불합리를 참지 못하고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불법’ 없애자고 시작한 채용 창구
그리고 2년여가 지난 2022년 1월, 자신이 활동하던 영동 지역의 노조 대표를 맡았다. 그 이름도 긴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속초·고성·양양·강릉 담당)이 양씨의 직함이었다. 양씨와 간부들의 노력으로 영동 지역 조합원은 1년여 사이 50여 명에서 17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 일로 양씨는 ‘모범조직상’을 받았다.
노조 지대장의 주요 임무는 조합원의 일감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용직이 대부분인 건설노동자는 1년에 열 차례 내외로 구직한다. 짧으면 2주, 길면 2~3개월 일하고 실직한다.
일감이 이어지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는다. “일 있을 땐 쓰고 없을 땐 쓰레기처럼 내버리는”(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구조다. 자연히 불법 재하도급과 중간착취가 판친다. 둘 다 건설산업기본법과 근로기준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행위지만 사실상 감독이 안 돼 불법이 성행한다.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 창구를 도맡은 건 ‘불법’을 없애보자는 고육지책이었다.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을 대신해 일감을 구하고 ‘오야지’가 받던 소개료를 조합원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유급휴일수당 등 그간 무시됐던 법적 권리의 보장도 이끌어냈다.
“나 억울한 건 내가 탄원서 쓰면 돼”
양씨 성격상 일이 잘 맞지는 않았다. 동료들은 양씨가 “싫은 소리 하길 어려워하”고 “식당에 가면 먼저 모자란 반찬을 나르는 유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양씨는 꾸준히 공사현장을 돌았다. 다음 일터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건설노동자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지 양씨 역시 노조에 오기 전 경험했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양씨의 집 앞으로 경찰의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양씨의 노조 지대장 활동이 폭력행위 등 처벌법에 의한 ‘공동공갈’이라는 내용이었다. ‘공갈’은 재산상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죄다. 경찰은 2021~2022년 양씨 등 노조 간부들이 하청업체에서 받은 임금 7900여만원을 모두 불법 갈취한 돈으로 판단했다.
양씨를 포함한 강원건설지부 간부 세 명은 2021~2022년 조합원 채용 요구가 난항을 겪자 공사현장에서 집회를 열고 하청업체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신고하겠다고 압박한 적이 있다. 이후 사 쪽과 다시 협상해 조합원을 채용하고, 노조 간부 임금 지급에 관한 단체협약도 하청업체 쪽과 체결했다.
지부장 1명은 노조전임비(노동조합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가 받는 임금)를 받고 다른 간부들은 철근·해체팀장 등 현장관리 업무를 하면서 일상적인 노조활동을 보장받기로 하청업체들과 합의한 것이다. 양씨도 이 합의에 따라 철근팀장과 노조 지대장을 겸임했다.
경찰은 이 모든 과정이 노사 협상이 아니라 건설노조의 일방적인 협박이라고 봤다. “(건설노조가) 집회의 자유를 악용해 공사업체를 굴복시키고 그들 뜻대로 요구해 수천만원의 노조전임비와 무노동 임금을 지급받았다.”(양씨 구속영장) 임금을 받으면서 업무와 무관한 노조활동을 함께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경찰은 또 “이들의 주된 목적은 단체협약으로 받는 노조전임비와 무노동 임금일 뿐 근로자 권익 보호는 아니다”라는 판단도 덧붙였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조합원 채용과 안전한 작업환경을 요구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으며 이는 정상적인 노조활동이라고 설명한다. 또 노조전임비 등은 이미 법에서 보장한 대로 노사와 합의한 것이어서 집회를 열어 따로 받아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건설노조는 2021년 11월 하청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철근콘크리트 서·경·인 사용자연합회’와 단체협약을 맺고 노조전임비 지급에 합의했다. 또한 전임자가 아닌 간부들은 노조활동을 하더라도 주된 업무는 현장관리직이었기 때문에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건설노조는 반박한다.
“자녀에게 공갈범으로 비치는 건 못 견뎠을 것”
경찰이 구속영장에서 “노조가 힘으로 굴복시켜 겁을 먹었”다고 표현한 하청업체들은, 4월26일 구속영장 청구 이후 오히려 양씨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5월1일 법원에 낸 15개 업체의 처벌불원서와 탄원서를 보면, 하청업체 ㅈ사의 대표는 “민주노총 소속 팀장이 조합원 근무를 관리해주고 회사와 근로자의 다리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노동조합 전임비나 팀장 수당을 큰 문제 없이 지급했다. 인력 수급도 별다른 마찰 없이 교섭을 통해 논의했다”고 썼다.
또 다른 하청업체 ㅅ사 대표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고용한 것은 건설현장 관행상 팀·반으로 고용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조합원들의 집회로 겁먹거나 업무에 방해된 사실은 없다”고 썼다.
양씨는 평소 동료들에게 ‘(영장에서) 공갈이란 단어만 좀 빠지면 좋겠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것도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에게 공갈범으로 비치는 건 죽기보다 더 싫었을 것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말이다.
노동절인 5월1일, 공교롭게도 양씨는 그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있었다. 전날까지 아내와 동료들이 그를 위한 탄원서를 쓰려고 분주한데 양씨는 왜인지 평온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전화해서 ‘형, 탄원서를 더 모아보려 한다’고 했더니 형이 별안간 ‘이젠 괜찮다, 나 억울한 것 내가 탄원서 쓰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이지 싶었어요.”(김현웅 사무국장)
양씨가 쓴다던 탄원서는 유서였다. 그는 자녀들에게 소고기를 사 먹인 다음날 아침,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자기 몸에 스스로 시너를 뿌려 분신했다. 그 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루 만인 5월2일 끝내 숨졌다. 가족과 노동조합, 4개 정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 앞으로 쓴 유서 세 통이 그의 차에서 발견됐다.
업계 불법 눈감고 노조에만 ‘준법’ 요구할 수 있나
“제가 (분신) 현장에 갔습니다. 화단에 심은 나무가 족히 3~4m는 되는데 잎사귀가 노랗게 다 탔더군요. 담뱃불만 몸에 닿아도 뜨거운데 양회동 동지는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그 뜨거운 불 먹어가면서 몸부림쳤을 동지를 생각하면 책임자들 다 잡아 죽여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추모제 연단에 오른 이양섭 건설노조 강원지역본부 본부장이 분을 삭이며 말했다.
어떤 이는 노조의 역할이 조합원 일감 찾아주기에 그쳐선 안 된다고, 비조합원의 고용안정도 함께 고민하도록 노동운동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조 간부가 관리직 업무와 노조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변칙을 만든 토양은 그대로 둔 채 자라난 풀만 탓하긴 어렵다. 건설노동자는 집회를 열거나 하청업체와 싸우지 않아도 일감을 구할 수 있게 제도적 틀을 마련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폭’(건설업 폭력배)을 뿌리 뽑겠다면서도 이런 현실에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건설노동자가 왜 임금체불에 착취까지 당하면서 일할까 잘 이해가 안 되죠? 그게 다음 일자리가 없는 사람의 숙명인 거예요.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노조활동 보장은 10여 년째 방치해놓고 채용 강요니 뭐니 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닌가요?” 송주현 건설노조 정책실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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