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힘 실어준 태국 국민들···군부·왕실 협조가 관건

김서영 기자 2023. 5. 15. 16: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태국 총선이 열린 14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전진당(MFP) 지지자들이 선거 개표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태국 국민들은 변화에 힘을 실어줬다. 군부에게서 정권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이번 총선에서 반군부 진영은 확연한 승리를 거뒀다.

15일(현지시간) 태국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하원 의석(500석) 중 전진당(MFP)이 151석, 프아타이당이 141석을 가져갔다. 중도 성향 품차이타이당이 70석으로 뒤를 이었고, 군부 계열 팔랑쁘라차랏당(PPRP)과 루엄타이쌍찻당(RTSC)은 각각 40석과 36석에 그쳤다. 전진당과 프아타이당을 합하면 반군부 진영이 전체 500석 중 292석을 석권하는 셈이다.

15일(현지시간) 태국 수도 방콕의 가판대에 총선 소식이 실린 신문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총선은 지난 20여년 간 태국 정계를 주름잡아 온 탁신계 정당이 진보적인 신생 정당에 밀렸다는 점에서 의의를 더한다. 프아타이당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이 총리 후보로 나섰다. 탁신계 정당은 2001년 이후 선거에서 모두 제1당 지위를 차지하며 ‘군부 대 탁신’ 구도를 형성해 왔다. 반면 이번에 제1당에 올라선 전진당은 전신인 퓨처포워드당이 해산된 이후 2019년 12월에야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전진당은 2020년 민주화 시위의 에너지를 이어받은 정당으로, 징병제 폐지·군주제 개혁 등 진보적 의제를 내세웠다.

티띠난 뽕수티락 쭐랄롱꼰대 교수는 “매우 놀랍고 역사적인 결과”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그는 “프아타이당은 이미 끝난 포퓰리즘 정책으로 잘못된 전쟁을 치른 반면 전진당은 제도적 개혁이라는 다음 단계 싸움으로 갔다”고 분석했다. 2020년 반정부 시위에 참석했고 이번 총선에선 전진당에 표를 던진 한 청년(29)은 “태국에 미래가 있다는 희망이 든다. 국민들이 눈을 떴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 태국 총선 돌풍의 주역…‘탁신 막내딸’ 제친 피타 림짜른랏은 누구?
     https://www.khan.co.kr/world/asia-australia/article/202305151351001

그러나 연립정부 구성과 총리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질 치열한 수싸움은 이제부터다. 우선 정부가 출범하려면 하원 250석 이상이 필요하다. 총리 선출은 좀더 복잡하다. 총리가 되기 위해선 상원(250석)과 하원을 합쳐 과반 이상(376석 이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상원은 군부가 지명한 이들로 채워져 있어 이들이 전진당과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전진당과 프아타이당은 협력에 뜻을 모았다.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나를 총리로 해서 6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해 하원 309석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프아타이당은 피타 대표의 제안에 동의했다. 촌라난 스리카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프아타이는 다른 정부를 꾸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진당과의 연정이 상원에서 좌절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원의원은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총리 선출을 위한 상·하원 376석에는 여전히 모자라기 때문에 제3당이 된 품차이타이당이 정권 교체의 키를 쥘 수 있다. 품차이타이당은 군부 계열이 아닌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선거 종료 이후 피타 대표는 “연정을 구성할 때 전진당의 가치를 지키겠다. 반독재, 반군부 연정이 될 것”이라며 군부와의 협력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피타 림짜른랏 태국 전진당(MFP) 대표가 15일(현지시간) 태국 방콕 당사에서 총선 결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군부와 왕실이 전진당의 선전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건이다. 전진당은 이번에 출마한 정당 중 유일하게 왕실모독죄(형법 112조) 폐지를 공약했다. 선거 이후에도 피타 대표는 “누가 뭐래도 우리는 왕실모독죄 폐지를 밀고나갈 것이다. 의회에서 개정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 사회에서 군주제는 일종의 역린으로, 다른 정당들이 왕실을 적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전진당과의 연정을 꺼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디언은 “프아타이당이 군주제 관련 정책의 민감성을 두려워해 전진당과 동맹맺기를 단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관한 질문에 패통탄은 “프아타이는 형법 112조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의회에서 논의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과거 선거에서 민주 진영이 이길 때마다 쿠데타 등으로 이를 전복해 온 군부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2019년 총선에서 퓨처포워드당이 크게 선전하자 군부는 불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했다며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정당을 해산시킨 전례가 있다. 피타 대표는 이미 보유주식 미기재 혐의로 선관위와 반부패위원회에 고발된 상태로, 이달 23일 전진당이 해산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피타 대표는 이에 대해 “더러운 구시대적 정치”라며 “우리도 무모하지 않다.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부패 혐의로 처벌을 피해 자진 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의 귀국 또한 변수다. 그가 당초 밝힌대로 7월에 태국에 돌아올 경우, 군부와의 갈등 구도가 악화될 여지가 있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 투표율이 75.2%로 역대 최고라고 발표했다. 당초 예상(85%)보다는 낮았지만 2019년 총선 투표율(74.87%)보다 상승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