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아이돌 제국’ 쟈니스, 결국 미성년 연습생 성폭력 사과
사실 인정은 피해…“단언 쉽지 않다”
일본에서 ‘아이돌 제국’으로 불리는 대형 연예기획사 ‘쟈니스’가 고 쟈니 기타가와 창업자의 미성년자 연습생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사과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 쟈니스 사무소 사장은 14일 밤 공개한 1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창업자 쟈니 기타가와의 ‘성 가해’(성폭력의 일본식 표현) 문제로 세상을 크게 소란스럽게 했다”며 “무엇보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분들께 깊게 깊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후지시마 사장은 쟈니스 창업자이자 초대 사장인 쟈니 기타가와(본명 기타가와 히로무·2019년 사망)의 조카이다. 기타가와는 생전 오카모토 가우안(26)을 비롯한 쟈니스의 미성년자 아이돌 연습생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후지시마 사장은 기타가와의 성폭력 사실은 명확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동영상 공개 이후 별도로 언론에 배포한 1문1답 문건에서 “당사자인 쟈니 기타가와에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별 고발 내용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혹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 마디로 단언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추측에 의한 비방중상 등 2차 피해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지시마 사장은 재발방지책으로 성폭력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컴플라이언스(준법) 위원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제3자를 위원회에 포함해 실태조사를 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적극적으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면서도 사내개혁 등을 해 나가겠다며 사임설을 부인했다.
쟈니스는 1962년 기타가와가 설립한 연예 기획사이다. 1990년대 ‘스마프’, ‘아라시’ 등의 그룹을 연달아 크게 히트시키며 J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쟈니스 주니어’로 불리는 연습생 시스템을 비롯해 한국의 연예산업 시스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회사이다.
기타가와는 1999년에도 아이돌 지망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이를 폭로한 황색 언론사 슈간분슌은 피해 아동 10명의 인터뷰를 공개했지만 쟈니스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 해당 언론사를 고소했다.
기타가와의 이번 성폭력 의혹은 주로 외신을 통해 이슈화됐다. 지난 3월 BBC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포식자: J팝의 비밀 스캔들>가 기폭제가 됐다. 기타가와가 자사 연습생이던 10대 소년들을 기숙사로 불러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큐멘터리에는 “다른 소년들도 (성범죄를) 알고 있었지만 ‘참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쉬쉬했다”는 피해자의 증언도 담겼다.
그러나 일본 내 주요 언론들의 침묵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쟈니스 연습생이었던 탤런트 오카모토가 지난 4월 일본외신기자협회와 기자회견을 하면서 중학생 시절 기타가와에게 10~15차례 성폭력을 당했고 피해자가 더 있다고 증언했지만, 슈간분슌을 제외한 일본 주요 매체들은 다루지 않았다. 일본 아이돌 제국 창업자의 성폭력 의혹에 업계가 침묵으로 담합한 셈이다. 일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오카모토가 왜 폭로의 장으로 외신기자협회를 택했는지 알 것 같다”며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팬과 시민들이 쟈니스 창업자의 성폭력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만6000명 분의 온라인 서명을 쟈니스에 전달하는 등 사회적 움직임이 일면서 쟈니스는 과거처럼 버티지는 못했다. 오카모토의 기자회견 이후 쟈니스는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고바야시 고쿄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회사 대표의 개인적인 사과가 아니다. 진상조사도 제3기관에 의뢰하고 회사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아사히신문에 논평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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