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투수' 마구 슬라이더. 스위퍼로 변신해 KBO리그 열풍
올 시즌 KBO리그에서 다승(6승)·평균자책점(1.26) 1위를 달리고 있는 NC다이노스 외국인투수 에릭 페디의 주무기가 바로 스위퍼다.
페디는 지난 1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히어로즈와 경기에서 6이닝 6피안타(1피홈런) 7탈삼진 2실점(2자책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 경기에서 총 99개 공을 던졌는데 그중 44개가 슬러브로 기록됐다. 슬러브는 슬라이더와 커브 사이의 궤적을 그리는 변형 구종이다.
페디가 던진 공은 정확하게 말하면 스위퍼다. 그전까지 스위퍼는 슬라이더나 커브로 분류됐다. 최근에는 슬러브로 불리기도 한다. 스위퍼라는 용어가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스위퍼를 별도의 구질로 분류해 본격적으로 부른 것은 2021년부터다.
스위퍼의 특징은 낙차가 작으면서 옆으로 더 휘어진다는 것이다. 스위퍼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다 급격히 바깥쪽으로 휘어진다. 타자들은 갑자기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공에 속수무책으로 헛스윙을 할 수밖에 없다. 오타니가 던지는 스위퍼의 헛스윙 비율(Whiff%)은 36.1%에 이른다.
스위퍼는 완전히 새로운 구종은 아니다. 처음에는 기존의 슬라이더 그립을 살짝 변형해서 던졌다. 최근에는 투심 패스트볼처럼 실밥 두 개에 검지와 중지를 얹어 공을 잡고 손가락에 강한 압력을 가해 던진다. 페디가 던지는 스위퍼 역시 투심 패스트볼 그립에 가깝다.
페디는 “어떻게 공을 잡고 던지는지는 선수마다 다르다. 슬러브 등 어떻게 불리든지도 크게 상관없다”며 “중요한 것은 최대한 공이 횡으로 떨어지게끔 던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스위퍼의 유행은 최근 달라진 타격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수직으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변화구가 득세하던 시기가 있었다. 공의 높낮이를 이용해 타자들 눈을 속였다. ‘12to6 커브’, ‘너클커브’ 등이 이때 유행했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타자들 사이에서 밑에서 위로 퍼올리는 어퍼스윙이 대세가 됐다.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공략하기 훨씬 수월해졌다. 투수들은 다시 타자들 시선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옆으로 휘는 변화구를 찾았다. 스위퍼 유행의 배경이다.
스위퍼와 유사한 공을 KBO리그에서 던진 투수가 30여 년 전에 있었다. ‘국보투수’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었다. 선동열 전 감독의 현역 시절 주무기는 슬라이더였다. ‘흑마구’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의 슬라이더는 횡으로 많이 휘는 것이 특징이었다. 오늘날 유행하는 스위퍼와 비슷한 궤적으로 공이 들어갔다.
김원형 SSG랜더스 감독도 “스위퍼는 마치 옛날에 선동열 감독님이 구사했던 스타일의 슬라이더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내 투수들도 너도나도 스위퍼를 배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 최고의 토종 에이스로 떠오른 안우진(키움히어로즈) 역시 연습 때 스위퍼를 시험 삼아 던지고 있다.
팀 동료 에릭 요키시에게 스위퍼 던지는 법을 배웠다는 안우진은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내는 구종인데 안 던질 이유는 없다”면서도 “스위퍼 그립을 잡고 공을 던져봤는데 땅으로 꽂히더라”고 말했다.
다만 스위퍼가 모든 투수에게 좋은 무기가 될 수는 없다. 안우진의 말처럼 던지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공을 쥐는 방법만 안다고 구사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김원형 감독은 “스위퍼는 손가락으로 강력한 스핀을 줘야 끝에서 힘있게 휘어나간다”며 “유행이라고 똑같이 따라 해도 힘없이 휘면 타자에게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키움 외국인투수 요키시도 “한국은 콘택트 위주로 짧게 치는 타자가 많기 때문에 효과가 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KBO리그에서 스위퍼를 배우려는 열풍은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10여년 전 체인지업, 커터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새로운 ‘마구’ 스위퍼도 조만간 마운드의 대세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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