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페리멘탈 록, 그리고 아트 록을 발명한 전방위 예술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그리고 수십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캡틴 비프하트’는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아티스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델타 블루스와 프리 재즈에 영향 받은 급진적인 록 음악의 흐름을 개척하면서 이후 다양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캡틴 비프하트는 독창적이고 또한 초현실적인 풍자를 담은 복잡하면서도 무모한 음악을 창조해 나갔다.
펑크와 뉴 웨이브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니까 캡틴 비프하트는 펑크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이미 펑크 록 뮤지션이었다.
캡틴 비프하트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 돈 반 블리엣은 1941년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학교를 결석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다양한 동물을 조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학교의 담임 교사 또한 일찌감치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봤으며 유럽의 미술 학교에 갈 수 있는 장학금까지 받았지만 그의 부모가 예술 분야로의 진로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결국 미국에 남는다.
10대 시절 델타 블루스와 존 콜트레인, 오넷 콜멘과 세실 테일러 등을 즐겨 들었던 캡틴 비프하트는 다른 지역에서 전학 온 프랭크 자파를 고등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레코드를 함께 들으며 친구가 되는데 프랭크 자파는 캡틴 비프하트에게 직접 음악을 만들 것을 권유했다. 이후 프랭크 자파는 돈 반 블리엣이 캡틴 비프하트가 되는 것을 적극 도왔다.
다양한 음악 감상을 통해 절충주의적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던 캡틴 비프하트는 자신의 그룹 ‘매직 밴드’를 결성하면서 음악 활동을 개시한다.
1967년 데뷔 앨범 <Safe as Milk>와 일년 후 <Strictly Personal>을 발매하지만 기괴한 음악에 판매고 또한 신통치 않아 여러 음반사에게 퇴짜를 맞았다.
계속 발매를 거부당하는 와중 캡틴 비프하트는 십대 시절 친구 프랭크 자파의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면서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대로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그렇게 발매된 1969년도 더블 앨범 <Trout Mask Replica>는 놀랍도록 전위적인 형태로 완성됐다.
앨범은 아방가르드 재즈와 델타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그러한 영향을 뛰어넘어 흥미진진하게 새로운 영역으로 밀어붙여냈다.
사이키델릭을 대놓고 표방하는 앨범은 아니었지만 같은 해 개최된 우드스탁을 비롯해 히피 문화가 정점에 도달했던 사이키델릭 시대에 이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됐다.
당연히 이런 결과물이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가장 유명한 아트 록 앨범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는 롤링 스톤에서 2012년에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 중 60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음반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은, 기이한 천재성이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작업물이었다.
걸작 <Trout Mask Replica>를 발매한 이후에도 수년에 걸쳐 밴드 멤버를 교체하면서 캡틴 비프하트와 매직 밴드의 활동이 전개됐다.
1967년부터 1982년 <Ice Cream for Crow>까지 대략 십여 년간 캡틴 비프하트는 지적이면서 제정신이 아닌, 치밀하면서도 혼란스런 구성을 바탕으로 기존 음악들의 해체와 재구성에 도전하는 대담한 작업물들을 내놓았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기괴한 음악에 대해 사기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캡틴 비프하트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런 도전적인 음악이 생계를 책임져 주지는 못했고 유럽 투어에서 밴드 멤버들에게 돈을 챙겨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결국 음악을 그만 둔다.
그렇게 1982년 음악계를 떠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그림에 매진했고 생애 마지막 30년을 회화에 바쳤다. 어찌 보면 이는 10대 시절 꿈꾸었던 시각 예술 분야로, 즉 그의 최초의 창의적 표현 방식으로 되돌아간 셈이었다.
그림에 집중하면서는 그는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의 미술작업은 음악활동보다 재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화가이자 영화 감독인 줄리앙 슈나벨이 그의 작업을 서포트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 전역의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성황리에 개인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처음 그의 그림들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취미삼아 회화에 손대는 또 다른 록 뮤지션 정도의 시선으로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독특한 그림 자체가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캡틴 비프하트의 과거 앨범 커버들 또한 직접 그렸던 그림들이기도 했다. 표현주의 적이고 원시적인 그의 회화법은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 잭슨 폴락 등과 비견됐고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갔다.
2010년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69세의 나이에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공개된 그의 모습은 사진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안톤 코빈의 13분짜리 다큐멘터리 <Some Yoyo Stuff>에서였다.
안톤 코빈 답게 흑백화면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캡틴 비프하트는 노쇠한 모습으로 시를 읽고 환경과 예술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이들이 캡틴 비프하트에게서 영향 받았다. 실제로 음악적으로도 많은 부분이 겹치는 톰 웨이츠 경우 캡틴 비프하트가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교류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크리에이터 맷 그레이닝 또한 십대 시절 캡틴 비프하트에게서 받은 영향을 언급했고, 위의 문단에서 말한 다큐멘터리에도 잠시 등장하는 데이빗 린치 또한 <Trout Mask Replica>를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꼽았다.
섹스 피스톨즈의 자니 로튼 경우 자신을 형성한 앨범 중 하나로 이를 들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존 프루시안테는 자신이 받았던 가장 중요한 영감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매직 밴드의 기타리스트 주트 혼 롤로의 <Trout Mask Replica> 앨범에서의 연주라 언급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커트니 러브 또한 캡틴 비프하트를 좋아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좋아했는지는 직접 찾아보시기 바란다.
최근의 예를 들면 영국의 치밀하게 정신나간 신예 블랙 미디가 ‘Moonlight on Vermont’ 같은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그 영향을 일일이 나열하기엔 너무도 많다.
박자는 제멋대로고 악기 소리들은 뒤엉켜 있는 가운데 캡틴 비프하트의 울부짖음이 튀어나오는 순간 이상한 활기가 폭발한다.
이는 단순히 순간의 본능에 의지한 즉흥 음악은 아니었고 통제되어 있는 상태의 즉흥을 담아낸 소리에 가까웠다.
불협화음과 초현실적 가사의 활용은 그 당시 캡틴 비프하트를 주류에서 제외시켰지만 결국 이후에는 미국 록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끔 만든 자격 요건이 된다.
상업적 타협과 접근하기 쉬운 구성을 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는 다음 세대 음악가들의 롤 모델이 됐다. 새로운 길을 닦기 위해서는 일단 한 사람이 먼저 자갈밭과 가시밭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법이다.
현대 미술과 록의 경계 영역에 위치한 캡틴 비프하트의 작업물은 그 무엇과도 달랐다.
단순한 음악적 쾌락이라던가 그럴듯한 구성 따위에 집중하지 않았던 그는 예술적 표현으로써 음악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작동시킬 수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후 음악 산업 전반을 문자 그대로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주류 음악 시장에서 더 많은 미친 사람들이 활약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 추천 음반
◆ Trout Mask Replica (1969 / Straight)
20세기 가장 도전적인 녹음 중 하나로 누군가는 “축음기가 등장한 이래 가장 놀랍고 중요한 예술 작품”이라 평했다.
BBC의 전설적인 DJ 존 필은 “음악 이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이해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 음악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Trout Mask Replica>일 것”이라 말했다.
처음 들으면 약간은 낯설 수도 있지만 곱씹어 감상하면 매력적인 스펙트럼에 감탄하면서 반복 청취하게 될 것이다.
◆ Safe As Milk (1967 / Buddah)
캡틴 비프하트와 그의 매직 밴드의 생생하고 흥미로운 출사표. <Trout Mask Replica>에 비해 비교적 듣기 편한 앨범으로 킹크스나 초기 후(The Who)와도 일부 겹쳐진다.
팝적인 엣지가 있는 동시에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어 질리는 법이 없는 앨범으로 몇몇 슬라이드 기타 연주와 퍼커션에는 후에 빔 벤더스의 영화 음악 작업으로 유명해지는 라이 쿠더가 참여하기도 했다.
존 레논이 자신의 집 찬장에다가 이 앨범의 제목이 디자인된 스티커를 붙여 놓은 사진 또한 유명하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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