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정치권 ‘단통법’ 폐지 앞장… ‘성지’ 늘까 정부는 신중, 통신사는 눈치만
MZ세대 공략 ‘경제 성과 지표’ 활용 방안
시장 경쟁 막아 결국 통신사 배만 불려
단통법 없으면 ‘불법 보조금 경쟁’ 살아날까
과기정통부·방통위 등은 신중한 태도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시행 10년차를 맞은 단통법이 당초 목적인 ‘불투명하게 지급되는 단말기 지원금(보조금)을 제한해 통신시장 유통 구조 개선’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통법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폐지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단통법을 폐지할 경우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명 ‘성지’가 늘어나면서 모든 책임이 정부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통신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단통법 개정을 놓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여당은 단통법이 시장 경쟁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만큼 단말기 지원금 확산과 경쟁 활성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 공감하고 있다.
단통법 폐지가 중요한 경제 성과 지표로 해석되면서 내년 총선에서 젊은 층을 공략하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있다. 단통법 폐지는 주로 40대 이하 MZ세대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과방위 의원실 한 관계자는 “단통법이 시행 10년차 맞았지만 시장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고 국민들이 통신비 부담이 완화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라며 “단통법 규제로 결국 통신 3사의 배만 불린 것 아니냐는 인식이 많아 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라고 했다.
◇”통신사 배만 불려”… 불법 보조금 제각각, 단통법 개정해야
단통법이 시장 경쟁 활성화를 막으면서 모든 수혜는 통신사로 돌아갔다는 인식도 정치권을 움직이게 하는 배경이다.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통신 3사는 올해 1분기에도 1조2411억원의 합산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조단위 이익 행진’을 이어갔다. KT와 LG유플러스의 경우 경영 공백과 네트워크 장애 보상에 따른 손실을 제외하면 성장세가 계속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통신 3사 합산 설비투자(CAPEX)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LG유플러스가 지난해 추가로 할당받은 3.4~3.42㎓ 대역 20㎒ 폭 주파수 기지국 구축에 나서면서 통신 3사의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6.8% 늘었지만, 일회성 설비투자를 제외하면 전체 설비투자는 줄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단통법 규제로 통신사들은 별다른 경쟁 없이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단통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상용화로 단말기 가격이 급증했지만, 불법 보조금 지급이 제각각이라 단통법이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단말기 판매 시 전체 보조금을 구성하는 이동통신사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따로 공시할 수 있는 분리 공시제 도입이 필요하다”라며 “선택 약정 혜택도 약정 기간을 줄이고 추가 연장했을 때 위약금이 발생하지 않도록 바꿔야 한다”라고 했다.
◇불법 보조금 경쟁 되살아날까, 정부는 신중한 태도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에도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섣불리 단통법을 개정 또는 폐지했을 경우 불투명한 불법 보조금 지급과 유통 구조 혼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통법이 할인 정보에 어두운 노년층의 통신요금 부담을 낮추고, 불법 통신 대리점 영업을 제한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만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는 게 과기정통부 측 인식이다.
위원장 공백으로 업무 파행을 겪는 방송통신위원회도 과기정통부와 비슷한 입장이다. 방통위는 최근 과기정통부가 주관한 단통법 개선 방향 논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통법 개정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단통법의 취지인 이용자 차별 금지 등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통신사들은 정치권의 단통법 폐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정부의 판단을 따르겠다”라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단통법이 유지되는 걸 바라는 분위기다. 단통법으로 무리한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5월 28일 제정, 같은 해 10월 시행된 단말기 보조금 규제법이다. 통신사들이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불법 보조금을 무분별하게 지급하면서 할인 정보에 어두운 노년층이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구입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에 소비자가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가입 유형, 장소에 구분 없이 동일한 지원금을 지급하도록 규제하도록 하는 규제법이 탄생했다.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을 경우에는 요금의 25%를 깎아주는 선택 약정 할인을 제공한다. 단통법 시행으로 통신사 간 가입자 뺏어오기 경쟁은 사라졌지만 지원금 경쟁이 사라지면서 경쟁 활성화가 저해됐고, 결국 전체 국민의 통신요금 부담을 높이게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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