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취지 어디로 갔나···'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갈등, 총선 표대결로 비화
의사면허취소법도 대통령 거부권 요구
간협, 총선기획단 꾸리고 단체행동 고심
간호법과 중범죄 의사 면허취소법을 둘러싼 보건의료계 내홍이 내년 총선과 맞물려 머리수 대결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의사·치과의사·간호조무사 등 두 법안을 반대하는 의료직역 단체들은 국무회의를 하루 앞둔 15일 총선 카드를 꺼내들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간호계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며 총선기획단을 꾸린 바 있다. 보건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처음 법안이 제정된 본질을 벗어나 정권 대결로 옮겨붙으면서 의료현장 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총선기획단 출범식을 열고 "최근 몇 년 사이에 특정 집단을 위한 일방적인 법 제정 추진으로 인해 보건복지의료직역은 두 동강 났다"며 “합리적 보건복지의료정책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가 16일 국무회의를 하루 앞두고 총선 출범신을 가진 배경은 지난달 27일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행보로 풀이된다. 의료연대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를 비롯해 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 중이다. 현재 의협에 가입된 의사 회원 수는 8만 명, 치협에 가입된 치과의사 회원 수는 5만 명에 불과하지만 전국적으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가진 인원은 80만 명에 달한다.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 등 소수 직역까지 합하면 총 회원 수가 400만 명에 육박하는 만큼 머리수를 앞세워 두 법안의 제정을 막기 위한 쐐기를 박으려는 전략이란 해석이 나온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 관현 규정을 따로 떼어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권리 등이 담긴 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후 재교부 받았음에도 또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법안은 이달 4일 정부로 이송됐다.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법안을 이송받으면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날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일(14일)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 서울청사에서 간호법안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열고 “정부·여당은 전날 당정협의회에서 간호법에 대한 재의 요구를 건의하기로 해 오늘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께 재의요구 건의 계획을 보고드렸다”고 밝혔다. 간호법안이 의료현장에서 직역 간 신뢰와 협업을 깨뜨려 갈등이 확산할 우려가 있고, 이 경우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의료연대는 간호법과 함께 의사면허취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요구하고 있다. 당초 요구대로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무게가 실렸지만, 의료법 개정안이 강행될 경우 총파업 등 단체행동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간호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당정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도 "거부권 건의 대상에서 의료인 결격·면허 취소 사유를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빠진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우발적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만으로도 의료인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의료인은 상대적으로 가장 덜 위험한 분야를 택하고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선택해야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필수의료 분야 기피가 심화되고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를 가속화시켜 국민 피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란 게 이들 단체의 논리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면허취소법이) 과연 코로나19에 헌신한 의료인에 대한 올바른 대우인지 되묻고 싶다”며 “만약 거부권 행사가 되지 않을 경우 추가 행동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연대 총선기획단은 △보건복지의료직역 전문성 강화 △필수의료 인프라 부족 해결 위한 대안 제시 △지역사회 의료 체계의 국민 접근성 증대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학력 제한’ 폐지 △치과 건강 보험 확대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이날 발대식을 시작으로 다음달 중 16개 시도지부별 발대식을 열고 총무본부 등 집행부를 구성하겠다고 예고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아지자 대한간호사협회도 투쟁 수위를 고심 중이다. 앞서 간협은 지난 11일 총선기획단을 꾸리고 “유권자를 이용해 마음만 빼앗고 배신하고 뒤에서 특정단체 로비를 받아 누가 장난질을 하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다”며 “이러한 정치인을 응징하고 22대 국회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협은 복지부와 함께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이 크다. 간협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대한간호협회 회관에 방문해 “정부를 맡게 되면 (간호법을) 검토해서 의료 기득권 등에 영향 받지 않고 제가 할 것이다. 믿어달라"고 발언한 부분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간호법이 대선 공약임을 적극 어필해 왔다. 이들은 이날 오후 복지부마저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를 공식화하자 단체행동 수위와 방향성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그동안 의료계 총파업을 강도높게 비판한 만큼 파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간호계도 총선 카드를 꺼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다만 총선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역 단체간 머리수로는 간호법 반대 인원이 훨씬 많다는 점에서 전세를 역전시키긴 쉽지 않다.
익명을 요한 의료계 관계자는 “직역 간 밥그릇 싸움과 여야 갈등으로 번지면서 처음 두 법안이 제정된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져야 하기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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