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복지장관 "간호법 거부권 행사 건의…의사면허취소법은 안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간호법이 학력에 제한을 두는 잘못된 법안이고 의료 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명 '의사면허취소법'이라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 재의요구권 행사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가 오는 17일 총파업을 예고한 데 대해서는 단체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은 있을 수 없다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조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법안 관련 보건복지부 입장 발표' 브리핑을 열고 "어제(14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간호법에 대해 헌법 제53조 제2항에 따른 재의요구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저는 오늘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께 내일(16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임을 보고드렸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국민의 건강보호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며 "그러나 간호법안은 전문 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간호법안은 의료현장에서 직역 간 신뢰와 협업을 깨뜨려 갈등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이 경우 제일 중요한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국민의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의료에서 간호만을 분리할 경우 국민의 권리가 제한될 우려가 있다"며 "의료에서 간호만을 분리해 의료기관 외에 간호업무가 확대되면 국민들이 의료기관에서 간호 서비스를 충분히 받기 어렵게 되고, 의료기관 외에서의 사고에 대해서는 보상 청구와 책임 규명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체계 관련 조 장관은 "제대로 된 돌봄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장기요양기관 등의 기능과 협업을 위한 직역 간의 역할이 국민들의 수요에 맞게 재정립돼야 한다"며 "간호법안은 돌봄을 간호사만의 영역으로 만들 우려가 있어 제대로 된 서비스 제공이 어렵게 된다"고 봤다.
그는 "의료법에는 없는 지역사회 문구가 간호법안에만 처음으로 포함됐다"며 "이렇게 되면 지역사회에서의 의료·돌봄업무가 간호사만의 영역으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보건의료 단체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고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는 노력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 현장,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들어 우리나라에 맞는 돌봄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직역 차별도 언급했다. 조 장관은 "간호법안은 협업이 필요한 의료현장에서 특정 직역을 차별하는 법안"이라고 규탄했다.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 내용은 복지부가 만든 현재 의료법의 내용과 같다는 지적에는 "2015년에 정부는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철폐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간호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당시 국회에서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없애는 내용은 제외하고 간호 관련 의료법이 통과된 바 있다"며 "잘못된 조항을 이제까지 그냥 놔두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 중 대졸 학력자 비중이 약 50%라고 하는데 간호조무사 학력이 제한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응시자격을 학원과 특성화고 졸업자로만 규정하고 있고, 특성화고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나오면 자격시험을 바로 볼 수 있지만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일정 기간 학원에서 수강을 해야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며 "이러한 입법 예는 다른 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국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답했다.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이 대선 전 약속한 사안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느냐는 질의에는 "국민의힘은 대선 과정에서 간호법 제정을 통해 초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지역사회 통합간호와 통합돌봄체계를 구축하고 간호사의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간호법안으로는 통합간호, 통합돌봄체계 구축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재의요구를 국무회의에서 건의하겠다는 계획을 보고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사회적 갈등이 큰 법안일수록 충분한 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간호법은 오는 16일 국무회의에 상정돼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간호법을 이송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공포하거나 이의가 있으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오는 19일이 간호법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한인 만큼 그 전 국무회의에서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현재 의료계 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간호법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 간호계에서는 단체행동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에서 파업하겠다고 한 상태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단체 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있을 수 없다"며 "관련법과 관련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긴급상황반을 통해서 점검을 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간호사분들은 100년 동안 환자 곁을 지켜오셨다"며 "앞으로도 환자 곁을 지켜주실 거라고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한편 간호법과 달리 보건의료연대가 함께 반대하고 있는 의사면허취소법은 재의요구권이 행사되지 않을 전망이다. 조 장관은 이와 관련 "간호법안을 제외한 다른 법안에 대해서는 어제 당정협의에서 논의된 바 없다"며 "의사단체와는 의료법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정책적인 사항에 대해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계속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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