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총선, 개혁 야당이 압승했는데 권력은 또 군부가? [특파원 리포트]
태국 총선에서 군주제 개혁을 들고나온 선명 야당 전진당(MFP)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으로 떠올랐다. 영국 가디언지는 야권이 군부 여당에 결정타(crushing blow)를 날렸다고 보도했다. 압승을 거뒀지만, 집권까지는 가시밭길이다. 특히 '군주제 개혁'이슈는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1.
태국 정치인에게 군주제 개혁 언급은 사실상 금기다. 잘못하면 기소된다. 군 입대는 청년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된다. 제비뽑기를 하지 않고 자진 입대하면 2년 복무기간 중 6개월을 줄여준다. 태국은 성 소수자(LGBT)가 차별받기보다 우대받는 사회지만, 동성 간 결혼은 여전히 불법이다.
전진당(MFP)은 이들 3가지 이슈에 대한 제도개혁을 약속했다. '군주제개혁' '징병제개혁' '동성 간 결혼 허용' 등 예민한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피타 림짜른랏(42) 대표의 개인적 인기도 한몫을 했다. 그는 태국 민주화의 상징 탐마삿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MIT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외모가 능력으로 평가되는 태국에서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대중 소통 능력을 보여줬다. 전진당(MFP)은 어제 열린 태국 총선에서 모두 150석을 확보해 제1당이 됐다. 여론조사기관들의 전망을 2배 이상 뛰어넘었다. 특히 수도 방콕의 33개 지역구 중 32개 지역구를 싹쓸이했다.
2.
반면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36)이 이끄는 푸아타이당(For the THAI)은 142석에 그쳤다. 태국 유일의 전국 정당이면서, 통신 재벌이었던 아버지 탁신의 자금력까지 지원받은 푸아타이당은 지난 2000년 이후 한 번도 총선에서 1당 자리를 뺏겨본 적이 없다(늘 군부 정당에 승리했지만, 쿠데타로 번번이 실각했다).
이번에도 서민을 위한 재정지원과 대출 지원, 농업보조금 지급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태국 유권자들은 프아타이당의 해묵은 포퓰리즘 공약보다, 전진당(MFP)의 근본적인 제도 개혁에 손을 들어줬다.
3.
여당인 군부 정당들은 예상대로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쁘라윳 짠오차(69) 총리가 이끄는 루엄타이쌍찻당(UTN)과 쁘라윳 웡수완(78) 부총리의 빨랑쁘라차랏당(PPRP) 등 군부 정당들은 77석에 그쳤다. 집권 9년 차 쁘라윳 총리는 어젯밤 10시쯤 텅 빈 당사를 떠났다.
문제는 헌법이다. 지난 2017년 개정된 태국 헌법은 250명 상원의원 전원을 군부가 지명한다. 따라서 군부 정당들은 이미 확보된 '250석의 상원의원'에 추가로 하원에서 '126석'만 확보하면 과반인 '376석'을 얻어 재집권이 가능하다. 반면 야권은 하원에서 376석 이상을 확보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전진당(MFP, 150석)과 프아타이당(142석)은 모두 합쳐 292석을 얻었다. 집권을 위해 84석이 더 필요하다. 캐스팅 보트는 70석을 확보해 3위를 기록한 중도성향의 '품차이타이당(Proud of THAI)' 손에 넘어갔다. 아누틴 찬위라꾼(56) 보건부장관이 이끄는 품차이타이당은 현 군부 연립정당에 참여했지만, 총선 민의에 따라 전진당·프아타이당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정권 교체가 될 경우 군부가 개입할 여력은 낮아진다.
4.
만약 아누틴 장관의 품차이타이당이 민심을 등지고, 군부 정당들과 연정을 꾸리면 군부는 또 쉽게 재집권이 가능하다. 이 경우 국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면 또 군이 개입할 수 있다. 태국 정치는 지난 50여 년간 이 패턴을 반복했다.
전진당의 피타 대표는 어제 저녁 패통탄의 프아타이당에 연정을 공식 제안했다. 민심은 얻었지만, 집권까지 갈 길이 멀다. 특히 군주제 개혁은 쉽지 않다. 지난 2020년 민주화 시위 때도 '군주제개혁'이슈를 꺼내 들자 국민들이 둘로 나눠졌다. 당장 의회의 '왕실모독죄(형법 112조)' 개정을 왕실과 군부가 용납할지도 미지수다.
국민들이 또 쿠데타를 걱정하자, 사흘 전 나롱판 칫깨우때 육군참모총장은 "내가 자리에 있는 동안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는다. 언론은 이제 쿠데타라는 단어를 지워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그가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오는 7월 태국에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막내딸 패통탄이 압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그의 귀국은 어려워졌다. 군부 정치처럼, 지난 20년 태국 정치를 주물러온 탁신가의 정치는 저물어간다. 총선을 마친 태국 정당들은 이합집산을 거쳐 7월쯤 총리를 결정한다. 국민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피타 림짜른랏'이 정작 총리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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