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문제 내고 “집중해라” 잔소리까지…AI교과서, 교실 바꿀까

김민제 2023. 5. 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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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경남 창원에 있는 남정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과학 수업을 듣고 있다. 이날 수업은 종이 교과서가 아닌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이뤄졌다. 경남교육청 제공

지난 11일 오후 2시께 경상남도 창원 남정초 5학년4반 교실. ‘태양계의 행성’을 주제로 한 과학 수업이 시작됐다. 교사가 칠판에 판서를 하고 학생은 교과서와 칠판을 번갈아 보며 필기하는 보통의 수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학생 책상에는 종이 교과서가 아닌 태블릿 피시(PC)가 한 대씩 놓여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수업 자료와 문제풀이 등을 제공하는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다. 교사도 칠판 대신 교실 앞 스크린에 펼쳐진 교과서를 가리키며 태양계를 구성하는 행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교사의 개념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3∼4명씩 조를 이뤄 태블릿 피시를 활용해 각자 맡은 행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강지후(11)군은 태블릿 피시에 ‘천왕성의 표면은 매끈합니다’ ‘천왕성은 태양으로부터 7번째로 멀리 떨어진 행성입니다. ’같은 천왕성의 특징을 적어넣는다. 경남도교육청의 수업 플랫폼과 포털 등에 올라온 자료들을 보고 수집한 정보다. 발표를 마치면 문제풀이 시간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의 영향을 받는 행성이 있는 곳을 OOO이라 한다. 다음 중 OOO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강군이 태블릿 피시 화면에 뜬 객관식 문제를 보고 4번 ‘북극성’을 고르자 정답을 의미하는 ‘100점’ 도장이 찍혔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거의 정답을 골랐지만, 답을 맞힌 학생과 틀린 학생에게는 개인별 수준 차이를 고려해 각각 다른 문제를 줬다.

교육부는 지난 2월 2025년부터 초·중·고교의 수학, 영어, 정보 수업 때 인공지능을 탑재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로 각자 지식을 습득한 뒤 토론, 프로젝트 학습 등 다양한 방식의 수업에 참여하고, 교사는 학생 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수업인 데다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의 활용 방식도 뚜렷하게 공개된 바 없어 현장의 우려도 적지 않다. 교육부 정책은 가동 전이지만 경남 등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런 수업을 이미 시도해보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11일 남정초를 직접 방문해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와 한계를 ‘미리 보기’했다.

경남 창원 남정초 5학년4반 학생이 지난 11일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한 수업을 마친 뒤 적은 소감이 교실 앞 스크린에 띄워져 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 인공지능 교실…자기주도·맞춤형 학습 가능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태블릿 피시에 교육과정과 관련된 각종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장착된 형태로, 종이 교과서의 내용을 단순히 태블릿 피시로 옮긴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 음성인식, 대화형 인공지능 등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수업 자료와 문제풀이, 보충 설명 등을 제공하고 교사에게는 이러한 학생의 학습 기록을 수집해 전달한다.

경남교육청은 자체 개발한 학습 시스템인 ‘아이톡톡’을 활용한다. 아이톡톡은 수업과 학습, 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도구가 탑재된 일종의 플랫폼이다. 학생들은 각자의 태블릿 피시에서 아이톡톡에 접속해 과목별 교과서를 보거나 수업 내용과 관련된 문제를 풀고 질문과 답변을 교사와 주고받을 수 있다. 교사에게는 학생의 학습 참여도와 문제풀이 결과, 과제 제출 빈도, 노트 필기, 수업에 참여할 때의 감정 등 학생이 수업에서 쌓은 모든 정보가 전송된다. 현재 관내 모든 초·중·고교 학생(40만9670명)이 아이톡톡 플랫폼에 가입했다. 태블릿 피시는 이 중 학생 92%에게 지급됐다.

종이형 교과서를 쓰는 수업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학생의 참여도에 있다. 기존에 학생이 지식을 얻을 곳은 교과서와 교사의 설명이 전부였다면, 새로운 방식의 수업에선 학습 플랫폼에 탑재된 각종 수업 콘텐츠와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학습 관련 영상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범위가 확대됐다. 남정초의 수업도 교사가 단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보다 학생이 자료를 조사하고 조사 내용을 학급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문제를 풀며 복습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박주원(11)군은 “종이로 공부할 땐 듣고 적고 끝인데 모둠을 짜서 태블릿 피시로 여러 가지를 직접 하면서 공부하니까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정민 교사는 “그냥 듣고 보는 지식보다는 직접 조사하고 발표하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게 빠르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인별 수준에 맞춘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도 결정적인 차이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 아이톡톡 플랫폼에 접속해 문제를 푸는데, 첫 문항은 학급의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제시되지만 정·오답 여부에 따라 이후 다른 문항이 주어진다. 인공지능은 틀린 문항 별로 학습 영상을 추천하기도 하고, 학생이 화면 앞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마치 교사가 잔소리하듯 “수업에 집중해달라”는 알림도 띄운다. 황금빛(11)양은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장비가 추천도 해주고 훨씬 좋다”며 “틀린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인강(인터넷 강의)이 나와 개념을 정확히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남정초 5학년4반 학생이 태양계의 행성에 관한 수업을 듣고 수업 내용을 복습하기 위해 문제를 풀고 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 과밀학급 해소, 교원 역량 개발 없이 역효과

교육 당국은 학생의 능동적 참여와 맞춤형 학습으로 교육 효과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에는 온도 차가 있다. 현장 교사들은 과밀학급 해소와 교사 업무 경감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교육부에선 학습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이뤄지니 교사는 개별 학생에 대한 학습 지원과 인성 교육에 힘을 쓸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수업에서 교사가 맡아야 하는 역할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다. 수준과 진도가 저마다 다른 학생 개개인의 학습을 돕는 것부터 디지털 기기 활용 방안을 안내하는 일,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개별 교사의 업무다. 교사 1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은 과밀학급(한반에 28명 이상)에서는 수업 진행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김지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남지부 정책실장은 “결국 아이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판단해 활용하는 것은 교사”라며 “활용법을 새로 공부하고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구성할지 추가로 준비해야 한다. 다음날 한 시간 수업에 하루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교사들은 행정업무 등으로 학생을 위해 쓸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업무 과중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못하면 학생들 간 학력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교사가 수업 내용을 직접 전달하기보다 학생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영역이 더 큰 수업 방식인 만큼, 학습 의지가 강한 학생들에겐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오히려 여러 교과과정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거나 태블릿피시로 학업 외 다른 활동을 하는 등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기 쉽다. 김지성 실장은 “코로나19 3년간 벌어진 학력 격차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밀착해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도교육청도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교사 충원을 통한 과밀학급 해소를 기대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최근 교원수급 감축 방안을 발표하는 등 현장의 지적과는 어긋나는 정책을 내놨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쪽으로 나아가길 기대하고 있는데 현 정부의 정책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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