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 되기위해… 공부방서 아이들과 뒹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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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선 공부만 하는데 여기선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해서 더 좋아요. 선생님이랑 '탑 쌓기' 놀이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지난 13일 오후 제주 제주시 건입동의 '푸른꿈 작은 공부방'에서 김소현(8) 양은 덧셈과 뺄셈 문제를 재빨리 풀어낸 뒤, 교사에게 "더 어려운 문제로 주세요"라고 외쳤다.
푸른꿈 작은 공부방이 위치한 제주시 건입동은 창립 멤버인 허수호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 대표가 공부방의 위치를 처음 고를 2007년 무렵,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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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장기 두고 우표 만들고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 기획
거쳐간 예비교사만 300여명
쥐 돌아다니는 가정집서 시작
지역사회 도움으로 건물 생겨
제주 = 글·사진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학원에선 공부만 하는데 여기선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해서 더 좋아요. 선생님이랑 ‘탑 쌓기’ 놀이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지난 13일 오후 제주 제주시 건입동의 ‘푸른꿈 작은 공부방’에서 김소현(8) 양은 덧셈과 뺄셈 문제를 재빨리 풀어낸 뒤, 교사에게 “더 어려운 문제로 주세요”라고 외쳤다. 김 양은 학교와 학원을 가지 않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공부방으로 온다고 한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학원과 달리, 공부방에선 놀이 형식의 수업이나 간식 만들기 같은 체험형 수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양은 마주 앉은 교사 정다인(21) 씨의 이름을 일부러 틀리게 부르며 살갑게 장난을 쳤다.
단체 수업 시간이 시작되자 교사 신민권(20) 씨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 장기 말을 이용한 한자 수업을 했다. 신 씨가 장기 말에 적힌 ‘졸(卒)’을 보여주며 무슨 뜻이냐고 묻자 이한결(11) 군이 “쫄병이요”라며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업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사 10명 중 9명(87%)이 최근 1년 사이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교사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지만, 이곳 푸른꿈 작은 공부방의 예비 교사들은 ‘좋은 스승 되기’ 연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은 모두 제주대 초등교육과 학생들이다. 이 공부방은 지난 2006년 제주대(당시 제주교육대)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래 17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공부방을 거친 제주대 학생만 300여 명, 아이들은 400명이 넘는다.
푸른꿈 작은 공부방이 위치한 제주시 건입동은 창립 멤버인 허수호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 대표가 공부방의 위치를 처음 고를 2007년 무렵,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 곳이었다. 첫 공부방은 월세 50만 원짜리의 가정집이었다. 쥐가 나올 정도로 낡은 집이었지만, 아이들 25명이 모였다. 허 대표는 “동네 아이 3명 중 1명꼴로 교육 봉사가 필요했다”며 “한 집 한 집 방문해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공부방에 보내달라고 제안했고, 그 결과 25명이 모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제 현직 교사가 돼 영평초에서 근무하고 있다. 허 대표는 “공부방에서 봉사하면서 뒤떨어지던 아이가 오랜 사랑과 관심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현직 교사가 돼서도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제주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제주동초, 제주대, 이웃 등 지역사회 전체가 아이들의 ‘스승’이 돼 줬다. 제주동초는 이 공부방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운영비를 지원해줬다. 이웃들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부순 가구 등을 무료로 고쳐주는 등 ‘재능 기부’에 나섰다. 제주대는 2017년 이들에게 주차장으로 쓰던 부지를 공부방 건물이 들어설 토지로 제공해줬으며, 지역 건설사는 건축비 약 2억 원을 지원해줬다. 그 덕분에 공부방은 부엌, 교무실, 제2수업실 등을 갖춘 번듯한 45평 건물로 이전할 수 있었다.
이날 제주대 학생들은 “더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 봉사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대 학생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의무로 와서 수업을 기획, 진행해야 한다. 다소 힘든 일정이지만 ‘더 좋은 스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이들을 움직인다. 교사 장안나(19) 씨는 “학교에선 이론을 배울 순 있지만, 아이들과 지내면서 생기는 ‘돌발 상황’을 미리 배울 순 없다”며 “공부방에선 이런 현실을 미리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신 씨는 “어릴 적 만났던 선생님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초등학생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며 “봉사를 하게 된 것도 완벽한 교사가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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