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知의 거인’의 진짜 유산

2023. 5. 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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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2021)는 3만 권의 책을 읽고 100여 권의 책을 쓴 '지(知)의 거인'이다.

지난 2002년 문화일보 '다시 책이다' 캠페인 때 인터뷰를 했던 곳으로 책상과 침대를 뺀 연 700m 길이 서가엔 죄다 책이었다.

그는 21년 전 "나머지 인생 후회하느니 무리해서라도 책에 파묻혀 사는 게 낫다"고 했었다.

어쩌면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책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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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일본의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2021)는 3만 권의 책을 읽고 100여 권의 책을 쓴 ‘지(知)의 거인’이다. 얼마 전 도쿄에 간 김에 옛 취재 수첩을 뒤적여 네코빌(猫ビル), 고양이 빌딩을 다시 찾았다. 지난 2002년 문화일보 ‘다시 책이다’ 캠페인 때 인터뷰를 했던 곳으로 책상과 침대를 뺀 연 700m 길이 서가엔 죄다 책이었다. 별세한 지 2년, 골목 모퉁이의 땅 6평에 세운 지상 3·지하 1층의 협소 건물 출입문은 굳게 닫혔고 인기척이 없었다. 외벽에 그려진 고양이 얼굴도 많이 빛바랬다. 그는 21년 전 “나머지 인생 후회하느니 무리해서라도 책에 파묻혀 사는 게 낫다”고 했었다. 건축비로 많은 돈을 빌렸던 터라 “80세까지 월 50만 엔(약 500만 원)씩 갚아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는데, 딱 81세에 세상을 떴다.

그 많던 책은 어디로 갔을까. 사후 1년 즈음 단행본 5만 권, 신문·잡지·자료 등 방대한 분량을 추려 도서관도 기념관도 아닌 고서점에 양도했다고 한다. ‘내가 들고 있던 책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 내용 자체에 흥미가 있는 사람’에게 넘겨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란다. 그는 생전에 고서점에서 취재 자료를 많이 구했다. “나의 이름을 내건 문고나 기념관 설립은 절대 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다운 성정이 직감된다. 어쩌면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책이 아닐지 모른다. 세인의 관심은 그가 남긴 골판지 상자 100개 분량의 미공개 취재 기록에 쏠려 있다.

다치바나는 1974년 문예춘추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연구-그 금맥과 인맥’ 기사를 연재했다. 당시 총리였던 다나카의 금권정치를 파헤쳐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록히드 사건’도 들춰냈다. 일본 정치의 물줄기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때 보도된 것은 ‘확인된 일부’였다. 유족은 취재 기록을 고인의 고향인 이바라키현에 기증하려 하지만 미동의 자료 공개의 법적 문제가 걸려 있다. 익명 취재한 녹음테이프 등이 추가 공개되면 새로운 스캔들이 될 수도 있어서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60여 상자를 보관 중인 NHK도 신중하다고 한다. 전례가 없는 저널리스트의 자료 공개 논란을 보면, 최근 우리 정치권의 돈과 정치부패 문제가 떠오른다. 아무리 입은 모른다고 해도 기록이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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