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라” 비아냥 받던 그 선수가 MVP 레이스 선두로… ‘제2의 이범호’ 맞았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경남고를 졸업하고 2019년 한화의 2차 1라운드(전체 3순위) 지명을 받은 노시환(23)은 ‘제2의 이범호’로 클 수 있다는 호평 속에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 이범호하면 ‘한 방’이었다. 그리고 노시환은 그 한 방을 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팀도 그 ‘한 방’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꾸준하게 줬다. 신인 시즌인 2019년 91경기에 나갔다. 타율이 0.186으로 크게 처지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팀의 미래에 물을 뿌려줄 준비는 얼마든지 되어 있었다. 2020년 타율 0.220에도 106경기에 나갔고,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12개)을 때려냈다. 2021년에는 타율도 향상(.271)된 것에 이어 18개의 홈런을 치며 진정한 ‘이범호 후계자’의 타이틀을 달았다.
그런데 2022년에는 정작 홈런 개수가 급감했다. 115경기에서 타율(.281)은 꾸준히 오름세를 그렸지만 홈런은 6개에 머물렀다. 장타율은 2021년 0.466에서 2022년 0.382로 급감했다. 팬들은 물론, 구단도 바란 그림은 아니었다. 실망스러운 반응도 쏟아졌다. “살을 빼야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이 어린 선수에게 쏟아졌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셈이다.
하지만 2023년에 노시환을 두고 더 이상 “살을 빼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타율도 타율이지만, 장타가 터지면서 팬들이 원했던 노시환의 그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시환은 15일 현재 34경기에서 타율 0.346, 8홈런, 2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21을 기록 중이다. 타율에서 리그 4위, 최다 안타 공동 3위, 홈런 2위, 타점 공동 8위다. 무엇보다 장타율에서 압도적인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치면 넘어가고, 치면 좌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나온다. 어느덧 리그에서 가장 타석이 기대되는 젊은 선수가 됐다. 아직 논하기는 너무 이른 단계지만, 지금 만약 리그 최우수선수(MVP) 투표를 한다면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페이스다. 그렇다면 노시환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타격 포인트의 변화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음이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노시환은 올 시즌을 앞두고 코칭스태프와 상의해 타격 포인트를 앞으로 조금 당겼다. 보통 타격 포인트가 앞에서 맞으면 더 힘 있는 타구를 날려 보내기 용이하다. 뒤에서 맞으면 이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대단한 힘이 필요한 법인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비거리가 긴 당겨치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타격 포인트가 앞으로 가면 유인구에 방망이가 헛돌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높아진다. 꼭 앞에서 치는 게 정답은 아니고, 선수의 스타일마다 각자 맞는 포인트의 지점이 다른 법이다. 다만 노시환은 거포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포인트가 다소 뒤에서 형성된 축에 속했다.
그 결과 타율이 높아지고 삼진이 줄어들고 타구가 우측으로 향하는 빈도가 높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홈런 및 장타 개수가 줄어들었다.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좌측 방향의 타구가 많아졌고, 워낙 힘이 있고 맞는 포인트가 좋으니 넘어가는 타구들의 방향이 달리 형성되기 시작했다. 타구 속도가 빨라지면서 좌우중간을 가를 확률도 더 높아졌다.
노시환은 지난해 홈런 개수도 적었고, 그나마 우측이나 우중간 방향으로 넘어간 게 절반 이상이었다. 올해는 홈런의 분포도 자체가 다르다. 8개의 홈런 중 우측으로 날아간 건 4월 4일 오승환을 상대로 친 홈런이 유일했다. 나머지 7개가 좌측 혹은 좌중간으로 향했다. 지난해와 확 달라졌다. 2루타 또한 좌중간과 우중간 타구가 고르게 나오고 있다. 단타의 경우도 좌측으로 가는 비중이 확실하게 높아졌다.
기본적으로 타격 타이밍이 늦은 상황에서도 반대 방향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재질을 갖춘 선수다. 여기에 포인트의 앞쪽에서 힘으로 당기는 능력이 좋아지니 전체적인 타구 속도도 확 뛰었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에 따르면 노시환의 지난해 집계된 타구의 평균 속도는 시속 136.9㎞였다. 가진 선천적인 힘이나 팀이 기대하는 이미지에 비해서는 속도가 느렸다. 평균 발사각도 5.9도 홈런 타자의 그것은 아니었고, 시속 165㎞ 이상의 총알타구 비율도 7.5%로 역시 낮았다. 덩치는 홈런 타자인데, 타격 지표는 중거리 타자의 지표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완전히 다르다. 평균 타구 속도가 143.6㎞로 지난해보다 크게 높아졌음은 물론, 평균 발사각도 12.6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타구 속도가 빨라지고 발사각이 높아지니 자연히 공은 담장을 위협하거나 야수들이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간다. 165㎞ 이상 타구 비율도 21.4%로 확 뛰었다.
그러면서도 우려했던 변화구 헛스윙 비율도 많이 높아지지 않은 편이다. 장점은 살리고, 위협은 최소화하는 기막힌 변화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 투수는 노시환을 더 까다롭게 상대할 수밖에 없고, 차분하게 타석에 임한다면 볼넷 비율까지 높아질 수 있다. 이범호는 볼넷 비율이 매년 10%는 넘는 선수였다. 노시환의 지난해 볼넷 비율은 9.8%. 여기까지 가면 진짜 제2의 이범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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