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총체적 난국’ 파키스탄…미-중 사이 줄타기?
[앵커]
파키스탄에서 임란 칸 전 총리가 부패 혐의로 축출되면서 불거진 파키스탄 정국 혼란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는 무너질 대로 무너졌고, 지난해엔 대홍수까지 나서 말 그대로 총체적인 난국인데요.
벼랑 끝에 몰린 파키스탄 상황을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지난주 체포됐던 파키스탄 전 총리, 임란 칸이 일단 풀려나기는 했는데, 혼란은 더 심화할 분위기죠?
[기자]
파키스탄 대법원이 지난 11일 임란 칸 전 총리를 석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당국에 체포된 지 이틀 만인데요.
대법원은 "누구도 법원에서 체포될 수 없다"며, "사법적 존엄성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패 혐의를 받는 칸 전 총리는 앞서 지난 9일 법원에 출석하려다 청사 입구에서 당국 요원에게 체포됐습니다.
법원 결정으로 그가 풀려나자 체포에 반대하며 파키스탄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지지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임란 칸 전 총리 지지자 : "임란 칸 체포가 취소돼서 이 나라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되살아났어요. 우리는 이 판결을 환영합니다."]
칸 전 총리는 곧바로 유튜브 개인 방송을 열고 "자유를 위해 희생하자"며 시위를 이어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앵커]
칸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 규모나 강도가 엄청나 보이는데, 파키스탄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진 이유부터 짚어볼까요?
[기자]
전직 크리켓 선수인 임란 칸은 대중의 인기 속에 2018년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군사 쿠데타가 빈번한 파키스탄에서는 역사상 두 번째로 선출된 권력이 정권을 잡은 거였죠.
하지만 칸 정권이 경제 회복에 실패한 데다 숨긴 재산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지난해 4월 파키스탄 의회가 총리 불신임 투표를 가결합니다.
총리가 축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이후 칸 전 총리는 "미국 등 외부 세력의 음모로 총리직에서 쫓겨났다", "정부와 군부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는 등 각종 음모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칸의 지지자들을 자극했고, 파키스탄 전역으로 시위가 번지게 하는 불쏘시개가 됐습니다.
[앵커]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는 동안 안 그래도 심각한 파키스탄의 경제는 파탄 지경이라고요?
[기자]
물가는 치솟고 외환 보유고는 바닥을 보인 상황입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6% 넘게 올라서, 통계 집계이래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물가 상황만 보면 국가 부도가 난 스리랑카보다 심각합니다.
[파키스탄 상인 : "아침부터 그냥 앉아만 있어요. 손님도 없고, 사려는 사람도 없어요. 오는 사람들도 살 돈이 없어요."]
3월 기준 외환보유고는 5조 7천억 원 정도인데, 한 달 치 수입액을 감당하기도 힘든 수준입니다.
파키스탄 경제가 이렇게까지 파국으로 치달은 데는 중국의 책임도 큰데요.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파키스탄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면서 나랏빚이 감당 못 할 수준으로 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까지 나자, 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앵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 IMF에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이것도 삐걱대고 있다면서요?
[기자]
파키스탄은 2019년부터 IMF와 구제금융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치면 약 8조 6천억 원 정도를 나눠서 지원받기로 했고, 지금까지 절반 정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지원금을 두고 IMF와 파키스탄 사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놓여 있는데요.
IMF가 요구하는 개혁 조건을 파키스탄이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IMF와의 협상이 어려워질수록 의지할 데 없는 파키스탄 경제가 중국의 투자나 차관에 더 기댈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최근 파키스탄 전력부 장관은 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MF 실무 협상이 실패하면 파키스탄의 대중 의존도가 심해질 것"이라며, "미국과 서방이 유념해야 한다"고 경고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파키스탄은 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미국의 우방국이잖아요?
[기자]
2001년 미국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을 때, 파키스탄이 미국에 적극 협조하고 대신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두 나라가 끈끈해졌죠.
하지만 파키스탄이 맞닥들인 총체적 위기 속에 이런 국제 정세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유출된 미국 기밀 문서에 적힌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의 말을 보도했는데요.
"미국과의 파트너십은 파키스탄의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킬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다른 정부 인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이 지원하는 유엔 결의안을 지지하면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계가 위태로워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월 유엔 총회가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 파키스탄은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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