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시간의 본질은 움직이는 것!
20대에는 시속 20Km로, 30대에는 30km, 60대에는 60km로 세월이 점점 빠르게 흐른다는 한탄은 나이가 들면서 육체의 생체시계가 느려 지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또 늙을수록 오래 기억에 남는 새로운 경험과 정보량 그리고 인상 깊은 일의 가짓수가 줄어들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인식이 생긴다. 이런 현상들은 여러 심리학자들이 이미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퍼거스 크레이크(Fergus I. Craik)는 평균 나이 72세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하는 실험을 했다. 실제로 120초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 노인들은 40초 지났다고 대답했다. 노인의 생체시계가 천천히 가니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간은 빨리 흐른 것으로 인지한 것이다.
시간의 어느 한 시점을 시각(時刻)이라 하고, 시간은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이다. 해가 뜬 시각과 다시 뜨는 시각과의 간격을 하루(1일)라 하고, 그 간격을 24 등분한 것은 시간의 예이다. 시간의 단위 초, 분, 시는 과학의 기본 단위이며, 60진법을 이용한 시간 단위의 사용은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하루의 8만 6400분의 1이 1초이지만, 1초의 과학적 정의는 1967년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내려졌다. 1초는 세슘(Cesium) 원자가 방출하는 빛이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1초의 정의도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고 우주팽창 이론에 의해 지금도 우주가 계속 움직인다면, 138억년 전 우주 생성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시간은 우주의 움직임과 함께 무한히 흐르는 것이다. 그 무한한 흐름을 인간이 태양, 달, 별 등 천체와 인류를 둘러싼 사물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토막 낸 것이 시간이다. 따라서 움직임은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시간은 움직임이다. 우주 만물이 움직이고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생기는 것이고, 모든 것이 정지한다면 시간도 정지할 것이다. 아니 시간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처럼 앞으로만 직선적으로 흐르고 뒤로 감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물리학에서 ‘무질서한 정도’를 의미하는 엔트로피(Entropy) 개념을 가지고 “시간의 흐름은 한 방향이며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물리학에서 에너지의 흐름은 질서가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즉, 무질서의 정도(엔트로피)가 더 심한 쪽으로 흐르는 것이라는 ‘엔트로피의 증가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이 시간의 흐름에도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컵 안의 물은 흙바닥에 쏟으면 엔트로피가 증가한 것이고 그 물을 다시 컵에 담을 수는 없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증가하면 증가했지 감소는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이론인데 이는 우주 만물뿐 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질서보다는 무질서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가 여차하면 발생한다. 그래서 질서 유지를 위한 법과 공권력은 인간 사회에 늘 필요한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엔트로피의 증가처럼 한 방향으로만 간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1905년), 빅뱅이론(1927년) 그리고 허블의 우주 팽창론(1929년)의 등장으로 그 과학적 타당성이 인정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흐름은 우주 어디에 있던 어떤 상태의 누구에게나 다 똑같다’라는 기존의 절대적 객관성을 부인하고, 시간도 상대적으로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아무튼 현재까지의 과학과 기술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므로 타임머신 같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시간의 본질은 움직임이니 더 많은 움직임은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다. 부지런히 많이 움직이고 일을 할수록 더 많은 시간을 유용하게 쓴 선(善)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통적 윤리, 종교 그리고 철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다. ‘청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 그 예이다. 광음(光陰) 즉, 빛과 어두움은 자연의 움직임이니 그들의 움직임을 시간으로 보고 그것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을 강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적 시간관은 순환적 시간이었으나, 과학의 영향으로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직선적 시간관으로 바뀌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것을 공고히 했고 엔트로피 법칙이 나오면서 과학적으로 설명된 것이다.
산업현장은 생체시계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기업에게 시간은 생산요소이며 투입(Input)이다. 시간의 불가역성을 강조하며 무조건 근로자에게 부지런히 움직이기를 강조할 수는 없다. 산업혁명 이후 시간의 측정이 더 쉬워지고 명확해지면서 산업계에서 시간은 과학적으로 그리고 경영학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자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테일러리즘(Taylorism)의 시간관리가 그것이며, 뒤 이은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상징되는 포디즘(Fordism)은 분업을 바탕으로 시간을 줄여 노동 생산성을 강조한 것이다.
기업에서 생산성은 시간이 핵심 요소이다. 시간이 돈이고 돈이 곧 시간이니 두 가지를 다 아끼는 방향으로 기업은 관리되어야 한다. 경영학에서 생산-운영관리의 기본 대상은 품질, 비용, 유연성 그리고 시간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신속하게 정시에 제공하는 것이 시간 관리의 핵심이고 현대 기업의 성공 비결이다. 시간경쟁(Time-based Competition)과 스피드 경영(Speed Management)의 개념이 여기에서 나온다. 시간을 경영전략의 핵심으로 삼아, 시간과 시점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자 사업상의 모든 면에서 시간의 투입을 줄이려는 경영활동을 말한다.
생산 현장에서 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재의 대기 시간을 최소화 한 JIT(적기 공급생산; Just In Time)와 SEF 이론이다. SEF는 빠르고(Swift) 일정한(Even) 흐름(Flow)을 뜻하는 것이니, 자재나 정보가 빠르게 이동하고 변동성이 낮은 일정한 흐름을 보여야 생산성이 크게 올라갈 수 있다는 이론으로 제조업뿐 만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그 적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제조업체에서 JIT와 SEF는 생산원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시간관리의 하나이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필요한 자재는 적시에 공급되어야 하며, 각 공정의 투입 인원수는 남거나 부족 하지 않게 관리되어야 한다.
직원들은 워라밸을 원하며 더 적은 근로 시간을 요구하고, 고객들은 더 많은 시간을 자신에게 할당해 주기를 원한다. 과거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 했지만 이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돈을 투자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책을 사면서 그것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살 수 있다면 좋겠다”라 했는데, 이젠 기업도 할 수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고객과 임직원에게 시간을 사서 주는 경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내외에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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