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ㅣ 원작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총체적 난국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3. 5. 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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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윤균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가 5월 12일 공개됐다. 원작 웹툰은 4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에 대재앙이 닥치고 유일하게 인간이 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산소와 생필품을 전달하는 택배기사로 살아가는 5-8의 활약과 택배기사를 꿈꾸는 난민 윤사월의 성장을 그린 디스토피아 액션물로 호평받았다. 7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마스터'의 조의석 감독과 김우빈의 재회, 이들의 첫 넷플릭스 진출작으로 기대를 모은 드라마 '택배기사'는 K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럴듯하게 보여주지만, 원작과 다른 각색이 특색이 아닌 단점으로 작용하며 아쉬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드라마 '택배기사'에는 사막화로 폐허가 된 광화문 광장, 모래에 잠겨버린 한강 다리, 흉물로 변한 서울의 랜드마크 타워 등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강남역과 압구정역 인근도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익숙한 현실 공간을 황폐한 풍경으로 구현한 건 원작 웹툰에선 볼 수 없던 볼거리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사막을 누비는 택배기사 트럭과 부족한 자원으로 인해 계급으로 나뉜 주거 지역도 원작 설정을 영상으로 이질감 없이 옮겼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드라마는 원작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주요 인물과 설정을 변경했다. 크게는 주인공 사월이 여성 캐릭터에서 남성 캐릭터로 바뀌었다. 원작에서 난민 소녀 사월은 자신을 거둬준 슬아 언니를 구하기 위해 택배기사 선발전에 나선다. 드라마의 소년 사월(강유석)은 설아(이솜), 슬아(노윤서) 자매의 집에 머무르다가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계기로 택배기사 선발전에 뛰어든다. 원작에선 혈혈단신 회사원이었던 슬아 캐릭터를 드라마에선 자매 캐릭터로 나눠 언니 설아는 군 소령이라는 직업을 가진 적극적인 인물로, 동생 슬아는 사월이 택배기사가 되는 동기를 부여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원작에 없던 새로운 여성 캐릭터 설아는 드라마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다. 택배기사 5-8(김우빈)과 사월뿐 아니라 이들이 대적하는 천명그룹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한다. 남성 캐릭터가 다수인 드라마에서 비중이 높은 여성 캐릭터로 군인 역할을 맡은 이솜의 연기가 다부지다. 문제는 사월의 성별을 남성으로 바꾼 당위성이 드러나지 않고 극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점이다. 원작이 지닌 '시스터후드' 정서가 사라졌고, 연약한 소녀가 싸움을 통해 약육강식 세계에서 살아남는 카타르시스가 소년의 성장기에선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구출에서 복수로 바뀐 사월의 목표도 드라마에선 강력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원작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재편된 계급 사회에서 생존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해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사월처럼 택배기사 선발전에 뛰어든 난민과 5-8 외에 택배기사들의 사연, 가족을 찾기 위해 택배원들을 찾아다니며 악행을 일삼는 자객, 최종 빌런 격인 천명그룹과 맞서기까지 이권 다툼을 벌이는 택배회사, 갱단의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했다. 드라마는 좀 다르다.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주인공들과 천명그룹의 대결로 압축하고 익히 보던 재난 블록버스터 공식에 짜 맞춘 모양새다. 

볼거리에 치중하면 이야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다. 원작 설정에선 격투장에서 일상적으로 치러지는 택배기사 선발전을 드라마에선 대형 이벤트 형식으로 연출했다.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단체 격투, 카체이싱 대결, 최종 결승전에 액션을 집약해 보여주는데, 짜임새가 돋보이지도 박진감을 주지도 못한다. 주인공들과 난민 출신 택배기사들이 팀을 이뤄 천명그룹 2세 류석(송승헌)의 조직원들과 대결하는 단순한 구도로 진행하다보니 캐릭터들이 기능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선악과 상관없이 깊은 인상을 남긴 원작 캐릭터들이 속속 생각날 정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원작을 접하지 않고 드라마를 본다면 재밌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글쎄, 이에 대한 답변은 회의적이다. 6부작으로 비교적 짧은 시리즈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을 즐기기가 어렵다. 전반적으로 극의 호흡이 늘어지면서 강약 조절, 완급 조절이 이뤄지지 않고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 악역을 맡은 송승헌의 존재감은 눈에 띄지만, 전형적인 빌런 역할의 한계가 아쉽다. 극에서 다루는 백신 사태도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드라마에 여러 단점이 드러나지만, 김우빈 만은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는다. 원작보다 영웅적인 성격으로 바뀐 인물을 연기하며 극을 이끄는 리더 몫을 믿음직하게 해낸다. 한 캐릭터 안에서 엉뚱 발랄함과 진지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가 김우빈의 특기라면, 이번엔 장난기를 거두고 무게감 있는 발성과 연기로 극에 임했다. 5-8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쓴 첫 등장이나 트럭 운전대를 잡은 모습은 웹툰 속 5-8을 닮아있어 원작 팬들을 흡족하게 할 것이다. 비록 캐릭터는 약해졌어도 사월을 연기한 강유석은 '뉴페이스'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맡은 의상의 디테일에도 눈이 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는 원작 에피소드의 주요 캐릭터들을 최대한 살리는 각색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여럿 만들었으나 결국 원작보다 새롭지도 나아지지도 않은 지금의 결과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영상화도 싱겁지만, 무분별한 각색을 시도하거나 원작의 개성을 장르의 평균값에 맞추는 전략은 무모하고 잃을 게 더 많아 보인다. 웹툰의 영상화, 한국을 무대로 삼은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와 드라마가 경쟁하듯 쏟아지는 시대에 소비자(시청자)는 업체(제작사)에게 과연 무얼 바랄까. 부디 이야기의 본질과 인물을 훼손하지 않고 상자(플랫폼)에 알맞게 담아줄 것. 여기에 특별한 인장까지 살포시 찍어 보여준다면 감지덕지할 거다. 이렇듯 기본이 튼튼한 포장, 배송법이 등장인물 손등에 찍힌 바코드를 큐알코드로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각색의 기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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