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가정 양립’ 확신 들때 아이 낳아… 한국 노동환경 개선돼야”[문화미래리포트 2023]

권도경 기자 2023. 5. 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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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미래리포트 2023 - 인구, 국가 흥망의 열쇠
(4) 美 이민정책·유럽 양육지원책 - 윌렘 아데마 OECD 사회정책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장시간 노동과 높은 사교육비
한국 저출산 현상 주요 원인
육아휴직 쓰기도 힘든 분위기
유럽 주요국 출산율 높은 것은
남녀 모두가 직장서 자리 잡고
아이 낳고도 직업적 가치 추구”
윌렘 아데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정책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다양한 가족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저출산 극복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의 모습. 복지부 제공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사람들은 실제로 아이를 낳습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스웨덴, 아이슬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출산율에서)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윌렘 아데마(Willem Adem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정책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5일 문화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유럽 주요 국가가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아데마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OECD 사회정책국에서 가족, 아동, 젠더, 주택 정책을 분석하는 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북유럽 국가의 많은 커플이 아이를 낳은 후에 결혼한다”며 “핵심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남녀 모두가 노동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가지면서도 자신의 직업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과 아이슬란드, 덴마크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2020년 기준 각각 1.66명, 1.72명, 1.67명으로 OECD 평균치 1.59명을 웃돈다. 같은 해 한국의 합계출산율(0.84명)의 약 두 배다.

아데마 이코노미스트는 “출산율 감소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출산율 추이는 경제적 안정성, 사회적·환경적 위험 요인, 사회적 분위기, 고용 기회, 정부 지원, 주거와 교육 비용 등 많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물 지원과 현금 혜택 등을 비롯한 정부 지원은 결정적인 요소로 보진 않았다. 그는 “정부 지원은 여러 요인 중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며 “다양한 가족정책이 아동 성장기 내내 지속적으로 뒷받침될 때 현금성 지원은 정책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금 혜택을 늘렸지만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 나라로는 스페인과 스위스를 꼽았다. 두 나라의 합계출산율(2020년 기준)은 각각 1.36명, 1.46명으로 OECD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이들 나라는 한국과 더불어 초산 연령이 32세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곳이기도 하다.

2020년 합계출산율 1.79명으로 OECD 최상위권에 속하는 프랑스의 비결은 수십 년간 시행된 가족정책에 있었다. 아데마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의 가족 정책에는 육아휴직, 양육수당, 보육 보조, 부모의 노동시장 참여 독려 등이 종합적으로 담겨있다”며 “포괄적인 가족 정책을 시행한 결과, 프랑스는 2019년 가족수당에 대한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3.44%로 OECD에서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저출산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는 장시간 노동과 높은 사교육비, 육아휴직을 쓰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 등을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만연한 장시간 근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렵게 만들고, 여성 고용률이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데 한몫했다”며 “이는 부부가 선택한 시점에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한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여성 고용률은 OECD 평균치(58.9%·2020년 기준)를 단 한 번도 넘은 적이 없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결혼과 출산의 걸림돌로 지목됐다. 아데마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노동시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심각한 이분법이 존재한다”며 “이분화된 노동시장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정규직으로 복귀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39개국 중 가장 컸다. 같은 직종에서 동일한 가치 노동을 한다는 전제 하에 한국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9만 원을 버는 셈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에서 26년째 부동의 1위다. 미국(16.9%), 독일(14.2%)의 약 2배 수준이다. 그는 “노동 시장의 이분법적 구조는 정규직에 대한 치열한 경쟁을 촉발한다”며 “젊은 세대들이 경력을 안정적으로 쌓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을 망설인다”고 덧붙였다.

높은 사교육비도 장애물로 지적됐다. 그는 “한국에서는 안정적이고 소득이 높은 직업으로 직결되는 입시 경쟁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시작된다”며 “사교육비가 적게 들고 스트레스는 덜 받고 공부 시간을 덜 쓰는 것이 행복을 향상시키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 수요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저출산 해결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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