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인재에 문턱 낮춰 출산율 대체… 美 인구 매년 0.3% 증가 전망[문화미래리포트 2023]
(4) 美 이민정책·유럽 양육지원책
美 올해 출산율 1.66명 수준
인구유지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학업·취업 등 각국서 이민행렬
2053년까지 ‘순이민’ 年110만
바이든 정책 반대하는 공화당도
연구원·기업임원 등엔 찬성기조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유럽·캐나다 같은 다른 나라 대학에서도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미국 대학을 졸업할 경우 더 좋은 직업을 구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다양한 이민자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차별도 적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조지메이슨대(GMU) 캠퍼스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전기공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모하메드 레자(39)는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17세·10세 두 딸을 둔 그는 지난해 1월 학생비자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프가니스탄 최고 사립대에서 컴퓨터공학 교수를 지내고, 기업 근무 경력도 있는 그는 2020년 GMU 등 미 5개 대학에서 전액장학금 제의와 함께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 정권을 피해 많은 난민이 망명 신청을 한 탓에 비자를 받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수 해외 인재를 위해 문턱을 낮춘 미 정부가 그의 입국을 허가했고 친척이 있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미 대사관을 통해 비자가 발급됐다.
레자는 “처음 미국행을 결심했을 때는 학위를 딴 뒤 고국에 돌아가려 했지만 탈레반이 집권한 지금은 영주권을 얻어 미국에 머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이민자에게 기회를 주는 나라이고, 무엇보다 내 딸들이 미국에 와서 여성으로서 인권을 누리고 더 큰 목표,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저출산에도 이민의 힘으로 인구 증가하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 = 14일(현지시간) 미 인구조사국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인구는 2010년 대비 7.4% 증가한 3억3144만9281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다.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 1위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인구 효과가 컸다. 타 선진국들과 비교해 높은 출산율과 이민자 수를 유지하면서 20∼64세 노동연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고 인적자원 개발·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몰아친 2008년을 끝으로 출산율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1.59명까지 감소했고 이듬해 재택근무 확산 등으로 1.67명으로 깜짝 반등했지만 올해 출산율은 1.66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다행히 출산율이 2030년 1.75명으로 상승할 전망이지만 인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체출산율(2.1명) 밑이다.
낮은 출산율에도 미국 인구는 증가세다. 의회예산국(CBO)의 향후 30년 인구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 인구는 올해 3억3600만 명에서 2053년 3억7300만 명으로 매년 평균 0.3%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1983∼2022년 연평균 인구증가율(0.8%)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일찌감치 인구 증가가 멈춘 유럽,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에 비해 훨씬 나은 상황이다.
특히 저출산으로 2042년부터는 미국 내 연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체 인구는 물론 생산가능인구 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오직 이민의 힘이다. 올해부터 2053년까지 순이민자 수(미국 내 유입에서 유출을 뺀 수)는 연평균 110만 명으로 향후 10년간은 인구 증가의 4분의 3, 2042년 이후에는 인구 증가 전체를 이민이 책임진다.
◇타이틀42 폐지·2024 대선으로 이민논쟁 재점화에도 우수 이민자 유입은 계속 = 조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에 따라 11일 코로나19 방역을 명분 삼아 불법 입국 이민자를 즉시 추방했던 타이틀42 정책을 폐지했다. 타이틀42 폐지를 전후해 5월 초부터 국경을 넘기 위해 대기 중인 이민자는 66만 명에 달하고 중남미에 떠도는 난민 2000만 명 중 상당수가 미국행을 희망하고 있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 이민정책을 공격하는 한편 장벽건설 재개·보호자와 동행하지 않은 미성년자 추방 등 내용을 담은 국경안보법안을 처리하고 내년 대선의 핵심 이슈로 띄우고 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1100만 명에게 영주권·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난민들에게 단기적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임시보호 상태 등을 검토하는 친이민정책 기조다.
민주·공화 양당은 중남미 출신 저숙련 이민자 유입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지만 양질의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가 경쟁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산업계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식·기술을 가진 이민자 유입이 필수다. 이에 미 정부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이른바 스템(STEM) 분야 중심으로 학업·취업을 위해 입국한 해외 인재들에게 H1B 비자 등을 제공하고 영주권 자격을 취득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반이민정책을 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스템 전공자들은 예외였다. 노벨상 수상자, 글로벌기업 고위 임원 등 최고 인재들의 경우 아인슈타인 비자로 불리는 EB1 비자를 발급해 10년간 제약 없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이민자 자녀를 사회에 적응시키고 우수 인재로 키워내는 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불법 이민자 자녀라도 공립학교에서 무상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 학교마다 학업과 별도로 영어를 배우는 ESL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정치경제학 석좌는 “미국이 다른 선진국이나 중국·러시아 같은 경쟁국보다 젊고 활력 있는 사회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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