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장이란'… 최고 음향 설계 넘어설 부천아트센터의 알찬 콘텐츠를 기대한다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고음악계 거장 필리프 헤레베허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17일), 경기 부천(20일), 경남 통영(21일)에서 공연한다. 시대악기로 주법이나 해석의 축은 그대로 갖고 가되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 교향곡을 연주한다고 해 손꼽아 기다려 왔던 무대다.
그런데 지인 중에 이 공연을 서울 예술의전당이 아닌 19일 개관하는 부천아트센터에서 감상하겠다는 이들이 꽤 있다. 시범 공연을 통해 세계적 음향설계사(애럽·ARUP)가 완성한 극장 내부 어쿠스틱을 미리 경험한 전문가들의 호평과 함께 1,400석 규모의 작지만 밀집도 높은 극장에서 시대악기의 음색과 볼륨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하철 7호선(부천시청역)으로 1시간 내외 이동이 가능한 서울 근교 극장이라는 이점도 있다.
부천아트센터는 평범한 현대식 건물이지만 내부는 ‘슈박스’(직사각형) 형태를 기본으로 하되 ‘빈야드’(객석이 포도밭 형태로 펼쳐진) 스타일의 장점을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연주자와 리코딩 프로듀서들은 어떤 위치에서 연주해도 굴곡 없이 소리의 밀도를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슈박스 타입을 선호한다. 국내외 아티스트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통영국제음악당을 비롯해 보스턴 심포니홀, 빈 무직페라인잘,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빈야드 형태의 극장은 롯데콘서트홀과 일본의 산토리홀, 상하이 심포니홀, 베를린 필하모니, 필하모니 드 파리,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등이 있다. 여러 묶음의 객석 구획을 펼쳐놓으면서 건축적인 아름다움도 살리고 시야 방해석이 거의 없어 최근 20여 년간 지어진 극장 중엔 빈야드 형태가 많다. 그런데 몇몇 극장은 공연의 규모와 악기 배치, 성악가 및 합창단의 위치에 따라 소리 굴곡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 유명 지휘자는 내부는 물론 외관까지 아름다워 '함부르크 관광상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엘프필하모니에서 다시는 연주하지 않겠다는 불만도 토로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상하이 심포니홀에서 아르보 패르트의 '크레도'를 들었을 때 오케스트라 소리는 앞에서 들리고 합창은 앉은 자리 뒤 벽에서 반사된 소리를 듣게 돼 무척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부천아트센터 음향 설계를 맡은 나카지마 다테오는 이에 대해 "요즘 극장은 슈박스나 빈야드 특정 형태를 따르기보다는 두 디자인의 장점을 활용하는 단계에 있고 그런 면에서 부천아트센터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갖췄다"고 자신했다. "과도한 소리 굴곡과 확대를 막기 위한 커튼이나 천장 캐노피, 무대와 가까운 발코니, 가변 형태를 갖춘 소극장까지 어떤 공간에서든 표현하고 싶은 이상적 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기획됐다"는 설명이다.
놀랍게도 부천아트센터에는 지자체 건립 공연장으로는 처음으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고, 무엇보다 극장만큼이나 공들인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리허설룸이 있다. 보스턴 심포니홀, 빈 필하모니, 필하모니 드 파리, 상하이 심포니홀 등 오케스트라 이름이 극장 이름인 경우는 수없이 많다. 상주 오케스트라가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느냐는 극장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간과해 왔던 부분을 부천아트센터가 신통하게 풀어낸 셈이다.
하드웨어가 이렇게 훌륭하니 극장 운영자들과 부천시는 이제부터 대단히 부지런하고 기민해져야겠다. 필리프 헤레베허와 같은, 애호가들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할 콘텐츠를 중심으로 극장의 이점을 확실히 알려야 하겠고 한국 공연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던 ‘말러 신드롬’의 주역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다시 한번 부흥을 꿈꿔야 하겠다. 부천시립합창단의 상임 지휘자가 김선아라는 점도 부천시에는 든든한 무기가 될 것이다.
부천 시민을 위한 혜택도 중요하지만 부천시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대외적 매력을 키우는 것은 문화도시로서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더없이 중요하다. 베로나, 브레겐츠, 베르비에, 루체른, 벳부 등은 아레나 극장이나 호반무대에서 글로벌 이슈가 되는 콘텐츠를 생산해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만 명의 관광객과 음악 애호가들을 도시로 끌어들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통영국제음악당은 서울에서부터 5시간이라는 이동 거리를 감수해서라도 찾고 싶은 극장으로 자리매김했고, 통영시에 대한 호감도와 가치 평가가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화가 만들어낸 힘이다. 극장은 건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이유 있는 활동이 위용과 정체성을 만든다.
객원기자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인구절벽' 병무청장 "모병제·여성징병 힘들다"…왜?
- [단독] “못 믿을 코인” 5년간 315개 상폐됐다
- [속보] 내일부터 4인 가구 전기료 월 3000원 오른다…kWh 당 8원 인상
- '아버지 살해 무기수' 김신혜 재심 본격화... 박준영·김웅 '진실 공방'
- 명함지갑인 줄 알고 4000만원어치 다이아몬드 버린 절도범
- "관리비를 두 배 올려달래요"... '깜깜이' 인상에 월세족 한숨
- "집이 흔들"… 잇따르는 동해 지진 불안감 커져
- 장애인에 안마 강요하고 성폭행 한 복지 시설, 버젓이 운영
- "수술실 성희롱은 일상" 어느 국립병원 간호사의 폭로
- 이현이, 몸에 이상 신호…"심장 피로 쌓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