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 엄마야~”… 73세 가왕, 한 소절이면 충분했다
“팬들과 함께한 제 나이 55세”
120분간 전성기 못잖은 성량
세대초월 3代가 함께 온 팬도
앙코르곡 ‘바운스’로 마무리
3만5000명 관객 ‘떼창’ 화답
그는 달변가가 아니다. 관객을 말로 구슬리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추리고 추린 히트곡만으로 2시간을 채우기도 시간이 모자란 탓이다. 그래서 그는 가왕(歌王)이라 불린다. 이름 석 자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그는, 조용필이다.
조용필은 말했다. “저는 별로 멘트가 없습니다. 그냥 즐기세요. 저는 노래할게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3만5000명의 관객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일흔셋의 나이에도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음색과 성량으로 120분 동안 쉼 없이 25곡을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모두가 환호하고 혀를 내둘렀다.
데뷔 55주년을 맞아 13일 열린 ‘2023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 세대를 초월한 관객들이 질서없이 섞였고, 3대가 함께 나들이 나온 이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수원에서 왔다는 이선옥(64) 씨는 “뒤늦게 (조)용필이 오빠의 팬이 된 30대 딸과 오빠를 만나러 왔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들을 위해 조용필은 개당 수만 원에 호가하는 응원봉을 무료로 나눠주는 ‘통 큰’ 선물을 준비했다.
마치 지구의 자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대형 LED 화면의 오프닝 이후 조용필은 ‘미지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다. 가왕의 콘서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이라이트라고 웅변이라도 하듯, 출발과 동시에 수천 발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고 원조 오빠부대들은 “오빠”를 연호했다. 오빠의 올해 나이는 몇 일까? 1950년생인 그는 “(제 인생을) 여러분과 함께 해왔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몇인 줄 아시죠? ‘오십 다섯’입니다. 아직 괜찮습니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는 데뷔와 함께 다시 카운팅됐기 때문이다.
‘그대여’ ‘못찾겠다 꾀꼬리’부터 최근 발표 곡인 ‘찰나’까지 마친 조용필은 평소 그의 콘서트에서 자주 듣지 못하던 선곡을 들려줬다. “1975년에 발표하고 하도 안 부르니까 항의하더라”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고, “이 노래는 TV에서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다. 여러분이 히트시킨 여러분의 곡”이라면서 ‘잊혀진 사랑’을 선사했다. 후렴구인 “가지 말라고∼”를 떼창으로 부르는 관객들은 조용필이 가지 못하게 영원히 이 자리에 붙잡아두겠다는 집념이라도 드러내는 듯했다. 이어 부른 ‘서울 서울 서울’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1988 서울올림픽 전야제에서 이 무대에 올라 불렀다”는 이 노래는 조용필의 콘서트를 끝으로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올림픽주경기장을 향한 마지막 인사와도 같았다.
단 한 소절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던 솜씨도 여전했다. “기도하는∼”(비련)에 탄식이 터져 나왔고, “엄마야∼ 나는 왜”(고추잠자리)에 관객들이 자지러졌다. 고음을 낼 때 특유의 들썩이는 어깨에서 흥이 흘러넘쳤다.
이날 날씨는 조용필의 완벽한 무대를 시샘했다. 20도 중반을 넘던 기온은 해가 지자 18도까지 뚝 떨어졌고, 맞바람이 쳤다. “여러분, 안 추우세요? 저는 맞바람에 눈물이, 아니 콧물이 좀…. 하하”라며 너스레를 떨던 가왕은 결국 콧물 때문에 앙코르 무대에서 ‘바운스’를 부를 때 한 소절을 놓쳤다. ‘노래의 신(神)’이 아닌 ‘노래의 왕’임을 입증한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관객들은 오히려 환호했다. 70대 중반을 향해 가는 그가 모든 노래를 완벽하게 라이브로만 소화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실수였던 셈이다.
가왕은 끝까지 과묵했다. 마지막 곡임을 설명하지 않은 채 스물세 번째 곡인 ‘여행을 떠나요’로 관객을 한껏 달아오르게 한 후 “감사합니다”라고 두어 차례 외친 후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냥 넘길 오빠부대가 아니었다. 잠실 하늘에 “앙코르”가 이어졌고, 다시 등장한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바운스’로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다. 왜 ‘바운스’가 끝 곡이었을까? ‘You make me Bounce’(너는 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라는 가사는 55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를 지지했던 팬들을 위한 헌사였다.
“끝났습니다. 더하고 싶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그의 인사는 간결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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