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을 손으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혀로 클릭합니다
[이희욱의 휴머놀로지]
1963년 스탠퍼드연구소 연구원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컴퓨터를 보다 편하게 제어하는 도구를 고안했다. 작은 나무 상자에 바퀴 2개를 달아 피시(PC)에 꽂고 커서를 움직이는 장치였다. 그 움직임이 쥐를 닮았다 해서 ‘마우스’라고 이름붙였다. 60년 역사를 거치며 마우스는 다양한 생김새와 기능으로 변주됐다. 이 물건을 처음 봤을 때도 그런 변종 마우스 가운데 하나 쯤으로 여겼다. 그래도 우리가 익히 쓰는 그 마우스일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생쥐를 닮은 컴퓨터용 입력장치가 아니라, 입 천장에 넣고 조작하는 기기다. 그래서 이름도 ‘마우스패드’(MouthPad)다.
왜 이런 것까지 필요하지? 그런데 제조사 설명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컴퓨터 사용자 대부분에게 익숙한 마우스 조작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손발이 불편하거나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이다. 루게릭병을 앓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피시를 조작하고 글을 썼다. 입으로 불거나 안구를 움직여 커서를 움직이고 글을 쓰는 입력기도 여럿이다.
마우스패드는 척수를 다친 이들을 위한 도우미다. 겉모습은 마우스피스를 닮았다. 치아를 본뜬 모습이지만, 천장 부위에 터치에 반응하는 패드가 부착돼 있다. 옆면엔 조그만 배터리와 입·출력을 인지하는 칩도 달려 있다. 전자 장치들은 레진 소재의 치아 모형으로 감싸져 외부 충격이나 침으로부터 보호된다. 이용자는 손가락으로 마우스패드를 조작하듯 혀로 입 천장에 부착된 터치패드를 조작하면 된다.
조작 방법은 여느 터치패드와 다르다. 혀로 천장을 터치하면 ‘클릭’, 입술을 찡그리거나 삐죽 내밀면 ‘오른쪽 클릭’이다. 사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혀가 11번째 손가락 역할을 대신한 셈이다.
하지만 입 속은 책상 위와 다르다. 물은 터치 조작을 방해하는 주된 요소다. 침이 고인 입에서 과연 세밀한 조작이 가능할까. 그래서 제조사는 습식 터치패드를 고안했다. 보다 세밀한 조작을 돕고자 머신러닝으로 입력 정확도를 높였다. 피시와 통신은 블루투스로 이뤄진다. 윈도, 맥오에스(MacOS), 리눅스는 물론 아이오에스(iOS)와 안드로이드 같은 모바일 운영체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마우스패드를 만든 곳은 엠아이티(MIT) 미디어랩에서 분사한 오그멘털이다. 전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아직은 대량 생산은 어렵지만, 구매 희망자를 대상으로 대기 명단을 받고 있다. 우선은 미국 내 판매만 시작하지만, “손을 많이 쓰는” 전세계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로를 넓힐 계획이다.
혀를 컴퓨터나 전자기기 입력장치로 쓰자는 아이디어는 약 10년 전부터 나왔다. 2013년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 등록된 논문은 ‘마우스패드: 혀를 이용한 컴퓨터 입력장치’를 다루고 있다.
애플은 ‘손쉬운 사용’이란 이름으로 아이폰·아이패드와 맥 컴퓨터에서 얼굴 표정이나 근육 움직임으로 입력을 대신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웃거나, 입을 벌리거나, 혀를 내밀고, 눈썹을 올리고, 눈을 깜박이는 동작으로 왼쪽·오른쪽으로 커서를 이동하고 클릭·이중클릭·삼중클릭도 할 수 있다. 근육 대신 “커서 5픽셀 오른쪽 이동” 식으로 음성으로 조작할 수도 있다. 구글은 2019년 내놓은 ‘픽셀4’에 ‘솔리’라는 모션 인식 레이더 칩을 내장해 동작만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모션 센스’ 기능을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등 일부 지역만 대상으로 이 기능을 지원하다가 이후 모델에선 관련 기능을 뺐다. 솔리 칩은 이제 2세대 ‘네스트 허브’ 같은 일부 스마트홈 제품에만 들어 있다.
오그멘털의 마우스패드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사지가 마비된 장애인에게 유용한 입력장치다. 글자를 입력하는 수준을 넘어 게임을 즐기거나 도면 작업을 하는 데도 보탬이 된다. 조작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따로 설치할 필요도 없다. 해마다 많게는 5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척수 손상을 입는다. 누군가에겐 괴짜 물건이 다른 이에겐 소통의 단비다.
이희욱 미디어랩부장 asad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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