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엄마의 아기 이름 짓기
내가 현재 거주 있는 곳은 미국 동부의 작은 도시. 한국인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그런 한국인 가정 중에 한 가족이 최근에 아이를 출산했다. 두 사람의 첫 아기이니 가족 모두 설렘과 또 약간의 초초함이 가득한 모습이었고 덩달아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 가족도 함께 설렜다. 미국에서 꽤 오래 살았어도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은 것은 처음이라 미국에서의 출산 육아 정보가 많지 않았던 새내기 엄마 아빠는 간혹 나에게도 몇가지 조언을 구하곤 했었다. 나도 알고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답을 해주고 있었는데 출산을 몇달 앞둔 언젠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아이의 이름에 관한 고민이 화제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출산을 한 직 후에 병원에서 출생증명서 신청을 대신 진행해주는데 이 때 바로 아기의 이름을 기재하게 돼 있다. 한국에서 출산 후에 출생신고를 직접 하기 전까지 더 고민하고 더 숙고할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과는 상이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부모들은 임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들이면 어떤 이름을 할지, 딸이면 어떤 이름을 할지를 일찌감치 정해놓는 경우가 꽤 많다. 이민 1세대이거나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국 출신 부모들이 아기를 가지게 되면 이름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진다. 아이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줄지 아니면 한국 이름을 지어줄지 그도 아니면 미들 네임을 이용해서 두 종류의 이름을 다 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 이름만 지어주게 되면 이중 국적이 허용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한국 여권 사용과 한국 출생 신고 중에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한다. 예컨대 한자 이름을 병기하기가 힘들고 영어 이름의 글자 수가 많은 경우에는 한국어로 병기했을 때 복잡한 상황이 생기기도하는 것이다. 주로 서너글자의 이름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크리스토퍼'나 '엘리자베스' 같은 이름은 불편한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한국식 이름으로 짓자면 한국어 발음이 어려운 미국인들의 발음 때문에 이름이 강제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예컨대 'ㅓ'나 'ㅡ'가 들어간 이름은 제대로 발음되기 힘들다. 미국 병원에 예약이 있어서 대기실에 대기하고 있으면 환자의 퍼스트 네임을 호명해서 들어오라고 부르는데 나는 항상 내 차례가 된 것을 긴장한 간호사의 얼굴을 보면 알아채고는 했다. 차트를 한참 보면서 내 이름을 완전히 바꿔 부르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포기한 얼굴로 내 성을 대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한국이름으로는 멋진 이름이지만 영어의 특정 발음과 비슷한 글자들이 들어간 한국 이름은 곤란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석'은 'suck', '건'은 'gun' 같이 부정적인 미국 단어들과 비슷한 발음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종'이나 '정'같은 이름 글자들은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아시안을 인종차별하는 사람들이 중국식 발음을 흉내 낼 때 자주 쓰는 'Chong'과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에 발음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음으로 미국여권에는 영어 이름을 쓰고 한국 여권에는 한국 이름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중요한 증명서나 확인서 등을 발급 받을 때 동일인 임을 따로 증명 받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니 피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많은 재미 한국인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자주 쓰는 이름(First name)은 영어 이름으로 짓고 상대적으로 잘 쓰지 않는 중간 이름은 (middle name) 한국어로 짓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레이첼 은경 김(Rachael Eunkyung Kim)과 같은 이름을 짓고 미국에서는 주로 레이첼, 한국에서는 주로 은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집 아이들과 같이 한국이름이지만 영어권 사람들도 쉽게 읽고 발음할 수 있는 이름으로 짓거나 영어와 한국어 이름이 동시에 될 수 있는 이름으로 짓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들 2~3세대 중에 남자아이는 이안(영어로는 Ian, '이앤'에 가깝게 읽는다.), 여자 아이는 한나(영어로는 Hannah, '해나'에 가깝게 읽는다)라는 이름이 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학에는 테크노니미(Teknonymy)라는 용어가 있다. 부모를 그들의 자녀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관습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가 1889년 자신의 저술에서 처음 명명한 용어지만 사실 이러한 관습은 여러 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도 역시 엄마나 아빠, 본인의 이름 대신 누구누구의 엄마나 아빠로 지칭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과정이다. 부모 역시 그 이름을 함께 가지게 된다. 좋은 의미를 담아서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할 수 있도록 가족의 고민과 깊은 생각이 녹아 들어 있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면 그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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