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민의힘에 드리워진 ‘전광훈 목사’의 그림자
4월29일 태극기와 성조기, ‘자유마을’ 깃발이 나부끼는 집회에 국민의힘이 소환됐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주사파 척결 광화문 국민대회’ 참가자들은 “국민의힘 책임당원에 가입해 대한민국 개조의 선봉에 선다”라고 선언했다. 한 참가자는 ‘전광훈 목사 건드리면 국민의힘 끝장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광화문 거리를 오갔다.
연단에 오른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거침없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전 목사는 윤석열 대통령을 “우리 광화문이 만들었다”라고 했다. 국민의힘을 비판하면서도, “내가 국민의힘 의원들 잘 알고 많이 만난다”라며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신에게 '(당의) 총선 패배를 바란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했다. 국회에서 ‘소수 여당’이 더 존재감이 있다는 이유다.
그래서 더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는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200석을 만들어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내고 자유 통일까지 해내야 한다. 악조건에서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힘 공천권을 국민에게, 그것도 돈 1000원 낸 당원들(책임당원)에게 돌려주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믿을 사람은 광화문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집회 한쪽에서는 하늘색 조끼에 ‘헌금 안내’ 명찰을 단 헌금 위원들이 헌금을 걷고 있었다.
전광훈 목사와 국민의힘의 동행은 전 목사의 일방적 구상이 아닌 것처럼 비춰졌다. 김재원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은 3·8 전당대회를 일주일 앞둔 3월1일 전 목사가 주도한 ‘3·1절 국민대회’ 무대에 올라 “최고위원이 되면 고향 선배인 존경하는 전광훈 목사를 잘 모시고 함께 가겠다”라고 유세했다.
수석최고위원 당선 이후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정신 헌법전문 수록’ 공약에 반대하는 전 목사에게 동조하며 “표를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 아니냐(3월12일 사랑제일교회 예배)” “전광훈 목사가 우파 진영을 천하 통일했다(3월25일 ‘북미자유수호연합’ 초청 강연)”라고 연달아 발언했다.
당대표 후보도 전광훈 목사를 찾았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결과적으로 불발됐지만, 전당대회 당시 전 목사에게 도움을 구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당 지도부가 그의 존재감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 목사는 늘 당에 대한 영향력을 과장해 말해왔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에서 후보자들이 전 목사를 찾으면서 전 목사의 위치가 부각됐다.
‘반공 보수’에 뿌리를 둔 전광훈 목사는 색깔론, 혐오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극우 세력을 대변해왔다. 전 목사는 2019년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국본)’를 결성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주도하며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그때 단식‧삭발 등 장외 투쟁에 나선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범국본 집회에 동참하며 전 목사에게 힘을 실었다.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황교안 전 대표는 현재 전광훈 목사와 결별한 상태다. 황 전 대표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내 전광훈 목사의 영향력이 없다고 말했다. “자꾸 우리 당을 기웃거리고 사람도 집어넣는다고 하지만, 당에서 전광훈 목사 뜻대로 된 게 없다. (제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12월을 기점으로 전광훈 목사가 타락해 (이전과 달리) 우리 당이 전광훈 목사와 같이 가기는 어려웠다.” 황 전 대표는 3·8 전당대회 과정에서 전 목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전광훈 목사의 영향력 부재가 김재원 최고위원의 득표 결과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2021년 국민의힘 지도부 선거는 ‘당원 70%, 여론조사 30%’로 치러졌다. 당시 김재원 최고위원은 10명 경선에서 합계 15%(6만2487표, 여론조사 9.55%)로 3위였다. 올해 8명의 최고위원 후보가 ‘당원 100%’로 치른 선거에서는 17.55%(16만67표)를 받았다. 이 관계자는 “전광훈 목사가 당원 가입을 독려했다지만, 여론조사까지 반영했던 2021년 지도부 선거와 비교해 당원들로만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의 득표율이 눈에 띄게 오르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황교안 대표와 같은 길 가는 김기현 대표”
전광훈 목사는 지금껏 자체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전 목사가 2016년 창당한 기독자유당은 제20대 총선에서 2.63%(62만6853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제21대 총선에서 전 목사의 기독자유통일당은 1.83%(51만3159표)로 국회의원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전 목사의 영향력은 일부 극우 진영에 머무를 뿐 전국 단위 선거에서 확장성이 떨어진다.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의 행보를 두고 “당 이미지나 어려운 격전지 선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 목사가 내년 총선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라고 밝혔지만, 시선은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으로 향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김 대표를 향해 “극우 세력과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쳐내지 못하고 황교안 전 대표와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한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김기현 대표가 단호하게 정치적 메시지를 내야 하는데 김 대표 옆에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 김기현 대표가 선거를 치르면서 빚진 대가다”라고 말했다.
5월1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품위 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태영호 최고위원과 함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김 최고위원의 징계 개시 사유는 ‘4‧3과 5‧18 민주화운동 비하 발언’ ‘전광훈 목사의 우파 진영 천하 통일 발언’이다.
천하람 위원장은 전광훈 목사와 연결고리를 끊는 건 단순히 그와 결별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과 지도부가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유튜버들과 단절하겠다고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여러 극단적인 유튜버들과 선을 긋고 중도 지향적인 정책을 펴면 자연스럽게 전광훈 목사의 영향력은 흐릿해질 거다.” 전광훈 목사는 당원 가입을 독려해 국민의힘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전 목사의 영향력 행사를 차단하고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여전히 국민의힘 지도부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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