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또 숨겨라”...애플의 비밀주의 이 여성이 만들었다 [홀오브페임]
세계 1등 기업 애플의 위대한 조력자
잡스에게 혁신가 이미지 심은 게이트키퍼
<홀 오브 페임(Hall of Fame)>
지구와 우리 삶을 바꾼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발자취를 다룹니다.
이들의 한 걸음이 인류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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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뉴욕 부활절 행진에서 젊은 여성 30명이 일제히 담배를 피웠습니다. 당시 미국 유력 신문들은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여성답지 못하다는 인식에 도전한 위대한 해방 운동”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곧 여성들의 흡연율이 급격히 올랐습니다. 사실 이 캠페인은 철저히 기획된 상업 행사였습니다. ‘홍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담배회사의 마케팅을 위해 벌인 조작극이었고, 행진에 등장한 여성들도 모두 버네이스가 섭외한 인물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자유의 횃불이라고 생각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고스란히 담배 회사의 수익이 됐습니다. 나중에 버네이스는 이를 반성하며 금연 캠페인을 벌였지만, 이미 확산할 대로 확산한 담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홍보(PR)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기업이든 개인이든 홍보는 여전히 중요한 전략입니다.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더 고급스러운 제품이 되는가 하면, 사회적 구설에 올라 기업의 명성이 실추되면 순식간에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일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홀오브페임 등장인물은 과학자나 공학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왕국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18년간 애플의 홍보를 총괄했던 케이티 코튼입니다. 지난달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시티에서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코튼은 잡스의 최측근이자 세계 최대 기업 애플의 오늘을 만들어낸 1등 공신으로 평가받습니다. 애플 제품의 철학을 만든 것이 잡스라면, 코튼은 애플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애플 브랜드는 4822억 달러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2783억 달러), 3위 아마존(2748억 달러), 4위 구글(2518억 달러)의 두 배 가까운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877억 달러)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애플의 비밀주의
코튼이 애플에 심은 유전자는 오늘날 애플의 문화이자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철저한 비밀주의입니다. 자사 제품을 최대한 널리 알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홍보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코튼은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바로 최대한 숨기고 또 숨기는 겁니다. 최근에 무뎌지기는 했지만,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2007년 1월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연단에 선 잡스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검은색의 조그만 기기를 꺼내며 “우리는 오늘 휴대전화를 새로 발명했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기기의 개발에 얼마나 큰 비용과 인력이 투입됐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알고 있었던 언론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입니다.
아이폰뿐만이 아닙니다. MP3플레이어의 혁명이었던 아이팟, PC와 스마트폰의 경계를 허문 아이패드 역시 등장은 비슷했습니다. 소문이 있지만 정확한 실체는 잡스가 무대에서 공개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는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신제품이 발표되고 나면 비교적 가깝게 예측한 애널리스트나 언론이 ‘찬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애플의 신제품 공개 행사에 대한 미디어와 전 세계인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알려진 게 없어서 궁금하니까 말이죠. 이후 삼성전자는 물론 샤오미,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들까지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튼이 애플에 심은 유전자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코튼은 언론에 철저히 숨기는 미스터리한 문화를 구축했다”고 했습니다. 코튼이 애플에 합류한 것은 1996년으로, 애플에서 쫓겨났던 잡스가 12년 만에 애플에 복귀한 이듬해였습니다. 당시 애플은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선별된 기자 선택해 이미지 구축
잡스가 퇴사한 이후 애플은 가정용 게임기, 전자수첩, TV, 카메라까지 내놓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당시 애플이 내놓았던 휴대용PC ‘매킨토시 포터블’의 무게는 무려 7kg이었습니다. 결국 애플은 잡스가 애플을 떠나 창립했던 ‘넥스트’를 인수하며 잡스를 복귀시킵니다. 잡스는 당시를 회고하며 “애플의 부도 90일 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복귀한 잡스는 불편한 관계였던 마이크로소프트에 도움을 요청해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이후 잡스의 전성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내놓는 제품마다 전 세계인의 삶을 바꿔놓았죠.
코튼의 첫 작업은 1997년 애플의 새로운 광고 캠페인이었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였습니다. 왼손에 사과를 들고 있는 잡스가 등장하고 ‘미친 사람들, 부적응자, 반란군, 말썽꾸러기’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이어 아인슈타인, 피카소, 존 레논, 마틴 루터 킹, 토머스 에디슨, 무하마드 알리 등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모습이 연이어 지나가는 내용입니다.
이 유명 광고 제작 과정을 지켜본 기자가 한명 있었습니다. 뉴스위크 기자 케이티 하프너는 촬영 과정과 내부 시사회까지 모두 단독 취재했습니다. 당시 잡스가 광고를 살펴보면서 울고 있었다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튼의 전략이었습니다. 코튼은 완벽한 통제 대신 철저히 선택된 미디어에 독점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유력 매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물론 금전 거래는 아닙니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향의 심층 기사를 내도록 하면서 애플의 이미지를 구축한 겁니다.
◇잡스 병세도 철저히 숨겨
뉴욕타임스의 테크 코너 상징이었던 월터 모스버그와 존 마크오프, 타임 편집장이었던 리처드 스텡겔 등이 대표적인 코튼의 파트너였습니다. 애플의 깊숙한 곳을 이들에게만 보여주다 보니 다른 미디어들은 이들의 시각을 그대로 따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잘 정돈된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식인 거죠. 테크 매체 맥월드에 따르면 코튼은 잡스와 잘 통할 것 같은 기자를 선별했다고 합니다. 이들에겐 때론 잡스와 직접 통화하거나 대면하는 기회도 제공했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코튼은 기사화가 가능한 내용과 아닌 내용에 대해 선을 긋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코튼은 잡스의 문지기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습니다. 잡스가 췌장암에 걸린 이후 언론에 이 문제를 완벽하게 숨겼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잡스의 투병과 관련된 얘기를 공식적으로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코튼의 진두지휘 덕분입니다. 잡스 사망 이후에 제작된 TBWA의 애플 광고에서 코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잡스 없이도 해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을 위해 용감한 얼굴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솔직해야 할까요.” 이 광고는 실제로 방영되지는 않았습니다.
코튼은 잡스 사망 이후 후계자인 팀 쿡 밑에서 일하다 2014년 은퇴했습니다. 애플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물러났지만, 그 후로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1965년 10월30일 뉴저지주 워싱턴에서 태어난 코튼은 1988년 애리조나대에서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홍보 대행사에서 마케팅 및 홍보를 일했습니다. 당시 이 행사의 고객 중에는 잡스가 운영하던 넥스트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인연이 전설적인 존재가 된 잡스와 최고의 조력자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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