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총선, ‘군주제 개혁’ 진보정당 돌풍···군부정권 교체는 미지수
군부 통치 10년을 심판하는 태국 총선에서 태국인들은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줬다. 14일(현지시간)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민주 진영’ 야권 주요 2개 정당이 하원 500석 중 30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했다. 이번 선거는 2014년 태국의 군부 쿠데타 이후 두번째이자 2020년 민주화와 군부 통치 종료, 개헌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세 손가락’ 시위 이후 처음으로 열린 총선이다.
군부가 임명한 상원 의원들이 총리 선출에 참여하는 현 제도 탓에 정권 교체를 확신할 수 없지만, 표심은 ‘민주 진영’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 야권이 승리에도 어느 정당도 집권에 필요한 의석은 확보하지 못해 정권 교체 여부는 연립정부 구성 결과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현지 방송 타이PBS에 따르면 15일 오전 2시 30분 현재 개표율 96% 기준 비공식 개표 결과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진보 정당 전진당(MFP)이 하원 500석 중 15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왕실모독죄 폐지 등 개혁적인 공약을 내세운 전진당은 피타 림짜른랏 대표(42)가 총리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예고했고, 실제로도 예상을 뛰어넘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 세력인 현 제1야당 프아타이당의 예상 의석은 141석이다.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36)이 총리 후보로 나선 프아타이당은 2001년 이후 선거에서 1당 자리를 처음으로 빼앗겼다.
이어 품차이타이당이 70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장관이 이끄는 품차이타이당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군부 중심의 현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향후 연정 구성 과정에서 품차이타이당의 선택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팔랑쁘라차랏당(PPRP)과 루엄타이쌍찻당(RTSC) 등 두 친(親)군부 정당에는 각각 40석, 36석이 돌아갈 것으로 나타났다.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가 총리 후보인 PPRP는 지난 총선에서 집권한 여당이며, RTSC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현 소속 정당이다. 쁘라윗 부총리와 쁘라윳 총리는 군 선후배 관계로, 2014년 쿠데타의 핵심 인물이다.
군부를 대표하는 양당은 의석 합계가 80석에 못 미쳐 민주 진영 야당과 큰 격차를 보였다. 야권의 전진당과 프아타이당의 합계 의석은 300석에 육박하지만, 정권 교체를 위한 의석에는 못 미친다.
반군부 진영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이날 총선은 끝이 아니라 더 험한 정치적 타협과 논쟁의 시작이 될 전망이다. 2019년 군부가 법을 개정하면서,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상원 250석과 하원 500석을 합한 총 750석 중 과반 이상(최소 376석)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현재 상원은 군부가 지명한 이들로 채워져 있다.
상원이 군부 측에 몰표를 던진다고 가정하면 야권은 하원에서만 376표를 얻어야 한다. 군부 진영은 126석만 확보하면 된다. 한 당이 하원에서 단독으로 376석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상원 회유 및 군부 정당과의 연정이 필요해질 수 있다. 총선 후 군부와 연정을 이룰 가능성에 대해선 전진당은 강경한 반대 노선을 취하는 반면, 프아타이당은 좀 더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애초 이번 선거에서는 탁신 가문의 부활 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피타 전진당 대표가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피타 대표는 기업인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이다. 태국 민주화의 상징인 명문 탐마삿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와 메사추사츠공과대(MI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그랩의 임원 등으로 일하다가 2019년 총선에 전진당의 전신인 퓨처포워드당(FFP)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아버지 탁신과 고모 잉락에 이어 총리 자리를 노리는 패통탄은 30대 정치 신인임에도 탁신의 후광으로 제1야당의 총리 후보가 돼 관심을 모았다. 탁신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7월 귀국을 예고한 바 있다.
선관위는 총선 후 60일 이내에 공식 선거 결과를 발표하며, 총리 선출은 7∼8월쯤 이뤄질 예정이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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