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라틴, 빈곤과 기회의 두 얼굴

오영민 환경부 과장 2023. 5.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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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민 환경부 과장

아주 오래간 라틴 아메리카는 우리에겐 그저 멀고 낯선 대륙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새로운 세계가 된걸까. 배터리 원료가 되는 광물, 성장하는 큰 시장, 대자연 등 여러 이유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이 최근 부쩍 커진듯하다.

라틴 아메리카를 지원하는 미주개발은행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 여러 라틴국가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필자는 라틴의 두 얼굴에 큰 놀라움과 매력을 느꼈다. 하나의 얼굴은 유럽과 너무 닮은듯 부유한 도시의 모습이라 놀랐고, 다른 하나의 얼굴은 그와 너무나 대조적인 날것 그대로의 자연과 빈곤의 그늘이다.

개발은행들은 2차세계 대전 이후 전후 질서의 재건과 빈곤퇴치를 목표로 설립된 브레튼우즈 체제의 산물이다. 이미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많은 나라가 OECD 회원국이 될 정도로 중진국 이상의 대열에 들어섰고, 브라질은 세계경제 10위권의 국가가 되었는데 여전히 이들을 지원하는 업무의 당위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해보게된다.

왜 여전히 그들을 지원해야하는가. 필자가 국제개발은행에 복무하기 전과 달리 그들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 보면서 얻은 답 중의 하나는 빈부격차다. 라틴 아메리카 내 소득 최하위인 볼리비아만 하더라도 텔레페리코와 같은 첨단 교통체계와 멋진 시설을 보유하고, 엄청난 양의 리튬, 구리 등 자원을 보유한 나라지만, 그 안에 사는 대부분의 국민이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다. 실제 방문한 라파즈라는 볼리비아의 행정수도는 비가 오면 쓸려내릴듯한 절벽위에 집들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쓰러질듯한 집들은 더 많다. 라파즈 자체가 평균 해발 3800km이상의 고산지역에 위치해있는데 부자와 빈자의 도시는 사는 곳이 산소량에 비례한다고 고도가 조금이라도 낮은 지역에 부촌이 형성되어 있고, 높은 지역에는 가난한 판자촌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문제지만 이 지역에 유독 빈부격차가 큰 데에는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다양한 원인이 얽혀있다. 우선 원주민과 유럽 이주민간의 교육, 사회, 정치적 격차가 뿌리깊다. 이 지역15세 이상 인구의 약 8%가 문맹자이고 OECD 국가평균 학교교육 기간이 9.5년인데 반해, 라틴국가들은 6년에 불과하다. 좋은 교육은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에서 제공되고 그나마 많은 아이들이 교육 자체를 포기한다.

합법화되지 않은 경제 영역이 큰 것도 빈부차를 심화시키는데 한 몫한다. 2008년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9%인데 반해 라틴 아메리카 노동인구의 절반이 비합법 경제영역에 종사한다고 한다. 칠레의 경우 약 20% 내외이나 볼리비아의 경우 67%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따라서 법인세 이외에 소비세, 수입세, 부담금 등 보편세제 부담이 높다. 이로인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과세 역진성, 합법 경제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또다른 문제도 생겨났다.

또다른 특징으로 외채의존도를 줄이기 위해1986년부터 1990년 사이에 전력, 통신 등 국가소유 자산을 급격히 민영화(매각 또는 이전)시켰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외국인 직접투자 (Foreign direct investment)가 동기간 36%가 증가했지만 외국자본증가가 라틴 기업에 대한 투자활동이 아니라 공공 자산의 매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유념해야한다. 그리고 직접투자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기업과 자본의 상당수가 스페인 등 유럽회사들이다. 특이하게도 이 과정에서 스페인 인구의 이민도 함께 이뤄졌다.

이 외에 불안정한 정치 등 여러 복잡한 빈곤의 원인들에도 불구하고, 라틴국가들의 성장 잠재력이 주목받는데는 이유가 있다. 남아메리카는 대부분이 스페인어와 천주교라는 언어문화적 요소를 공유하고, 법제도 역시 소위 이베리아 반도계열 스페인계 법제도를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미국, 캐나다 등 세계 최대 선진시장과 바로 맞닿아 있다는 지리적 이점도 상당하다. 놀라운 점은 멕시코를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의 노동인구 절반이상이 바로 라티노다. 라틴국가와의 물리적, 정서적, 언어적 연결고리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여러 다국적 기업이 멕시코 등 북미 국경국가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도 그들의 내재적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선 성장의 경험을 이 신대륙과 더 긴밀히 공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들은 빈곤의 그늘에서 벗어난 빛나는 우리의 성장 스토리를 누구보다 귀담아 듣는 든든한 우방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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