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긴 살았지만…" 체호프 유작, 우리네 인생 성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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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아무것도 없군."
국립극단 연극 '벚꽃 동산'의 마지막 장면.
벚꽃 동산을 뒤로 하고 모두가 떠나간 뒤, 텅 빈 저택에서 늙은 하인 피르스가 나직이 내뱉는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이자 그의 유작인 '벚꽃 동산'이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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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보 연출, 30년 연극 인생 첫 체호프 희곡 무대화
'우영우' 눈도장 찍은 백지원, 5년 만의 무대 복귀
등장 배우만 13명…다양한 인간 군상 보여줘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아무것도 없군.”
국립극단 연극 ‘벚꽃 동산’의 마지막 장면. 벚꽃 동산을 뒤로 하고 모두가 떠나간 뒤, 텅 빈 저택에서 늙은 하인 피르스가 나직이 내뱉는다. 사는 동안 불현듯 느끼게 되는 인생의 허무함이 짙게 묻어난다. 피르스의 대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벚꽃이 흩날린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체호프 작품의 특징은 극적인 사건보다 여러 인물의 복잡한 관계에 집중한다. 김 연출이 ‘벚꽃 동산’을 선택한 이유 또한 지금도 공감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어서다. 김 연출은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에서 인생을 성찰하는 모습을 봤다”며 “관객마다 각각의 인물을 보며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호프가 ‘벚꽃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04년. 농노 해방과 러일 전쟁 등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이 뒤섞인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는 귀족의 몰락, 그리고 변화된 현재를 살며 성장한 상인 계급의 대비가 중심에 있다.
몰락한 귀족이자 벚꽃 동산의 지주인 라네프스카야가 6년 만에 빈털터리가 돼 집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큰 축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는 농노의 아들이었지만 신흥사업가로 성공한 로파힌이 있다. 작품은 이 두 사람 외에도 라네프스카야의 친딸 아냐와 양녀 바라, 하녀 두나샤, 집사 에피호도프, 하인 아샤, 피르스, 대학생 트로미모프 등의 이야기를 함께 펼치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등장 배우만 13명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차별점은 라네프스카야에 대한 묘사다. 라네프스카야는 사치와 향락에 젖은 귀족 캐릭터로 주로 묘사됐다. 이번 작품에선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내면에선 슬픔이 묻어나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김 연출은 “대본을 읽을 때 라네프스카야에 대한 느낌이 기존과 많이 달랐다”며 “천진난만한 라네프스카야가 아닌 무게와 아픔이 있는 라네프스카야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 분)를 채용하는 로펌 대표 한선영 역으로 열연한 백지원이 라네프스카야 역을 맡았다. 5년 만의 무대 복귀다. 지난해 국립극단 ‘세인트 조앤’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돌아온 배우 이승주가 로파힌 역으로 호흡을 맞춘다. 두 배우 모두 김 연출과 여러 차례 작업한, 서로 믿고 의지하는 연극계 동료다.
극의 백미는 3막과 4막이다. 3막에서 로파힌은 경매에서 벗꽃 동산을 낙찰받은 뒤 그동안 참아 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4막에선 벚꽃 동산과의 이별을 앞둔 라네프스카야가 끝내 눈물을 쏟아내며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이승주는 “로파힌의 감정을 좇느라 힘들었지만,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지원은 “라네프스카야가 무대 위에서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 깊어져 가는 불안과 상실감이 객석에서 느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벚꽃 동산’은 오는 28일까지 공연한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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