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뇌가 뛴다]⑬“마라톤 경주로 치면 이제 10km”...“양자 연구 역전은 가능하다”
양자 기술 분야 연구와 기업 재직 경험있는 전문가
광자 기반한 양자 소자 분야에서 연구 성과
“국내 양자 기술 격차 좁히려면 선두 그룹의 노하우 배워야”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1983년생이다.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생은 아직 젊은 실무진 축에 속하지만, 과학계에선 위상이 남다르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는 연구자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로 불린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들이 자신의 핵심 연구를 처음 시작한 평균 연령이 37.9세로 나타났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기초 과학과 공학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제2의 허준이’를 넘어서 한국의 첫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 그리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가 이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스위스 순방길에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을 방문했다. 아인슈타인의 모교로 세계적인 양자 연구의 중심지다. 법조인 출신인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계적인 양자 분야 석학들을 만나 한국도 양자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사흘 만인 지난 1월 24일에는 젊은 과학자들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불러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당시 대통령실을 찾은 6명의 젊은 과학자 중 한 명이 손영익(39)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다. 손 교수는 양자 분야를 대표하는 젊은 과학자다. 기초과학자로서 양자 기술을 연구한 경험과 실제 양자 컴퓨터 개발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모두 가진, 이론과 실전에 능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정부가 양자 기술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만큼 손 교수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17일 대전 유성구의 KAIST 캠퍼스의 연구실에서 손 교수를 직접 만났다. 손 교수는 “선도 연구진의 실패 경험담을 배우고, 한국이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산·학·연의 협력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자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학사와 석사를 전기공학으로 받았다. 당시에는 광소자를 연구했다. 그런데 양자 기술과 광소자를 결합하면 더 재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양자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주목을 전혀 받지 않던 시기다. 그저 순수 연구로 좋은 논문을 많이 낼 수 있고, 과학 분야로 유망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양자 기술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소자를 만들고 있다. 양자 기술은 크게 컴퓨터, 통신, 센서로 나눌 수 있다. 내가 만드는 소자는 세 분야 모두에 활용할 수 있지만, 특히 컴퓨터와 통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가령 양자컴퓨터를 만들 때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종류를 나누는데, 광자(빛 입자)를 이용하는 경우를 광 큐비트라고 부른다. 큐비트는 양자 컴퓨터의 기본적인 정보 단위다. 여기에 쓰이는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광 큐비트의 장점은 무엇인가.
“양자 컴퓨터가 결국 상용화되려면 큐비트의 숫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 현재 학계에서는 100만개 이상의 큐비트를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지금 기술로는 500개 정도를 만드는게 최선이다. 많은 수의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는 광자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소개해달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일 때 양자 소자를 기계 소자와 결합해 하나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특히 양자 통신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다. 현재 양자 통신은 짧은 통신 거리가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양자통신 거리를 늘리려면 중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당시 개발한 기술이 양자 통신 중계기에 활용된다. 아마존에서도 이 기술을 주목해 자사의 블로그에 소개했다.”
-양자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사이퀀텀(PsiQuantum)’이라는 회사에 입사했다. 100만개 이상의 큐비트를 가진 양자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회사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이미 2년 전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사)이 됐다. 양자 컴퓨터 스타트업으로는 최초이기도 하다.”
-한국도 선진국의 양자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정부에서 양자 기술 육성을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다. 우선 선두 그룹을 빠르게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양자 분야에서 한국은 후발주자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선두 그룹과 기술 격차도 꽤 크다.”
-양자 기술 격차를 줄이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는 앞서간 사람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단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시행착오를 단숨에 줄여서 가야 한다. 다행스럽게 양자 기술은 아직 기초 과학의 단계에 있다. 산업계와 달리 과학계는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 기본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양자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협력하고 있다. 그래서 선두 그룹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본다.”
-노하우를 배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은 정보 수집에 좀 약한 편이다. 단순히 논문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해외 연구자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막혀 있는지 같은 살아 있는 정보에 약하다. 이런 것을 배우려면 결국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 해외의 수준 높은 연구실에서 연구했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경험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자리 잡은 인재들을 한국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히 시간이 아주 많이 든다. 지금 양자 기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면서 공부하려는 학생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해외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고 돌아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외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다. 동료가 되고, 같이 연구하거나 토론하다 보면 노하우를 흡수할 수 있다.”
-해외 협력은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에서도 양자 기술 분야에서 해외와의 협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한·미 공동연구과제를 만들면서 양자 기술이 큰 규모를 차지했다. 이 과제를 통해 미국의 선도 그룹과 연구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하버드대와 공동 연구 센터를 운영할 예정으로, 조만간 학생들을 하버드대로 보내 양자 연구를 함께 할 예정이다.”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과학기술 육성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윤 대통령이 두 가지 키워드를 들고 왔다. 국제 협력과 인재 양성이었다. 과학자들이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양자 분야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참석했는데, 우수한 인력을 해외로 보내 배우게 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금도 우수한 인력이 해외로 나가 공부하는 환경은 잘 갖춰져 있지만, 이들을 어떻게 한국에 돌아오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현재 미국 양자 기술 산업도 인력난이 심각한 편이다. 양자 전문가들의 숫자가 일자리보다도 적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능력있는 한국 과학자가 미국에서 자리 잡기에 양자가 좋은 분야라는 것이다. 한국도 양자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양질의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양자 전문 연구기관이 있고, 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도 여럿 있다. 해외 사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국내 양자 기술이 선도그룹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시각이 있다.
“양자 기술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차세대 먹거리’라는 비유에서 나왔다. 양자 기술이 높은 수준에 올랐고, 머지않아 상용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마라톤으로 따지자면 총 완주 거리인 42.195㎞ 중 아직 10㎞도 오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뒤쳐졌지만, 도착점까지 한참 남은 만큼 역전도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기초과학을 공학으로 옮기고, 상용화하는 데 아주 많은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실제 해외 기업들을 봐도 양자 기술을 빠르게 개발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난항 중이다. 핵심은 과학과 공학자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이다.”
손영익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2009년 서울대 전기공학 학사
2011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석사
2018년 미국 하버드대 응용물리학 박사
2018년~2020년 사이퀀텀 R&D 엔지니어
2020년~현재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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