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을 말한다]⑤ 공매도 있었다면 주가 조작 실패했을까

정현진 기자 2023. 5.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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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증권 발 주가 조작 사태로 공매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얽힌 종목 일부는 공매도가 금지돼 있는데, 공매도의 가격발견 기능이 발휘되지 않아 주가 과열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현행 규정상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지수에 포함되는 종목만 공매도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폭넓게 허용됐다면 인위적 시세 조종을 막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본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는 “작년 말부터 많은 펀드매니저가 삼천리를 주목하고 있었다”면서 “당시 주가 흐름을 보면 삼천리의 코스피200 편입 가능성이 없지 않았는데, 빨리 편입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주가 폭락 사태가 불거진 지난달 24일의 직전 거래일인 21일을 기준으로 8개 종목 주가를 보면, 공매도가 허용된 종목이 비교적 덜 올랐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당시 주가 상승률을 비교하면 삼천리, 세방, 다우데이타, 서울가스, 선광, 대성홀딩스, 하림지주, 다올투자증권 순으로 많이 올랐다. 다우데이타, 선광, 하림지주 등 공매도가 허용됐던 종목의 상승 폭이 나머지 5개 종목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가장 많이 급등한 삼천리의 경우 공매도가 불가능한 종목인데, 1년 동안 주가가 350% 넘게 올랐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을 빌려 매도한 뒤, 주가가 실제로 하락했을 때 다시 매수해 빌린 주식을 갚아 차익을 노리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 전략인 셈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자 국내에서는 전면 금지됐다. 이후 2021년 5월부터 코스피200·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에 한해 공매도가 재개됐다. 공매도의 가장 큰 순기능은 시장의 적정가격 발견이 꼽힌다. 악재를 신속하게 반영해 주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는 지난 2일 국회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공매도가 폭넓게 허용됐다면 작전 세력이 쉽게 주가를 띄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매도 규제로 인해 사태가 커졌을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작전 세력이 주로 공매도가 불가능하면서 유통주식 수가 적어 시세조종에 용이한 종목들을 일부러 노렸다고 본다”면서 “타깃 종목을 선정할 때 공매도 가능 여부도 당연히 함께 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가 오르질 않길 원하는 대주주의 경우 공매도를 활용해 주가를 끌어내리기도 한다”면서 “불공정거래 제재를 강화한다는 전제하에 공매도가 확대됐다면, 공매도는 이번 주가 폭락 사태를 막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매도가 전면 허용돼 있었다고 하더라도 주가 조작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공매도도 결국 물량이 있어야 할 수 있는데, 해당 8개 종목은 유통 물량이 거의 없다”면서 “(지분 50~70%를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가 지분을 빌려주지 않는 이상 큰 효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천리 여의도 본사 전경./삼천리 제공

이번 사태에서 주가 과열을 초래한 것은 작전세력의 치밀한 계획과 공매도 부재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데도 꾸준히 오르는 주가에 개인의 매수자금이 더해지면서 주가 상승세에 힘이 실렸다. 여러 증권사가 주가 과열을 우려하는 종목 리포트를 다수 발간했지만, 주가 상승 흐름에 편승하려는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적정 기업 가치를 찾으려는 개인 투자자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기업의 저평가 수준을 가장 쉽게 파악하기 위한 지표는 주가수익비율(PER)이다. 시가총액을 당기 순이익으로 나눠 계산하면 된다. PER이 높으면 기업이 내는 이익 수준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PER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수치는 없기 때문에, 같은 산업군의 다른 기업과 비교해야 한다. 만약 비교할 만한 기업이 없다면 해당 종목의 과거 PER과 비교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유진투자증권이 발간한 종목 리포트에서 삼천리의 2022년 예상 PER은 20배에 달했다. 2024년 예상 PER은 무려 42.4배였다. 반면 2021년 결산 기준 PER은 6.2배 수준이었다. 영업이익 예상치는 매년 비슷한 수준인데도, 주가가 급등하면서 PER도 함께 치솟은 것이다. 같은 도시가스업종인 경동도시가스의 2022년 결산 기준 PER(5.39배)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과거 PER과 비교해도, 역사적으로 삼천리의 PER은 12배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해당 리포트에서 “최근 에너지 대란이 겹치며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는 회사의 자산가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면서 “실적과 주가가 모두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삼천리의 목표 주가를 당시 주가(2022년 11월 29일 종가 기준 37만2500원)의 30% 수준인 11만원으로 제시했다.

목표주가를 분석하고 실제 매매에 적용하는 기관투자자들은 대부분 적시에 주식을 팔았다. 신진호 마이다스자산운용 대표는 “삼천리의 경우 고점의 허리 어깨 수준에 주식을 팔았다”면서 “당시에도 과열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머리 꼭대기에서 팔고 싶어 했던 투자자들이 크게 물렸고, 적정주가를 계산하고 매매하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진작 이익을 실현하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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